주인공이 외부인이라고 관객까지
배우 송강호를 '송강호 선배'라고 부르곤 한다. 전혀 인연이 없는 사이인데, 그저 그의 연기력을 존경해 가끔씩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그렇기에 <택시운전사>는 (역시 몹시 애정하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보다 기대되는 작품이다.
운 좋게도 최초 시사회에서 <택시운전사>를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광주 관련 영화는 <26년>, <박하사탕> 정도만 봤다. 어쩌면 그래서 기대감이 더 높았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더 실망했는지도 모르겠다. <택시운전사>는 썩 좋은 영화가 아니었다.
다행히, 신파는 아니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과 기자인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외부인이었다. <택시운전사>는 그들의 눈을 통해 당시 상황의 공포스러움을 정확히 전달했다. 국가 권력을 등에 진 폭력이는 차라리 광기에 가까웠음을.
그러나, 차라리 신파였으면 싶었다. 눈물을 짜내지 않는 대신 <택시운전사>가 택한 건 끝없이 통속적인 것들뿐이다. 시작하자마자 만섭이 내뱉는 대사부터 노골적으로 이 영화의 전개를 다 드러내고 만다.
이 캐릭터만이 아니다. 황기사(유해진)는 딱 유해진이 연기할 만한 캐릭터이고, 광주 택시기사들은 만섭과 대립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지 않나, 그나마 류준열이 연기한 재식만이 이 영화에서 특별하게 활용된다.
그래도 다른 인물들은 피터에 비하면 낫다. 이 실화의 동력인 독일 기자가 어떤 능동적인 상호작용도 없이 소비되고 만다. 그를 앉혀놓고 저녁 자리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상투성의 끝을 보여준다. 결말부에서 그가 보여주는 연기를 보면 '배우 낭비'란 말이 떠나질 않는다.
영화 전체도 전반부는 희극적이고 중후반부는 비극적인데 그 연결고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상투적이고 뻔한 코미디는 송강호의 연기에 의지하고 있고 중후반부는 그 상황에 기반하고 있으니 그걸 조율하는 연출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외부인이 이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야 똑같이 외부인인 관객도 영화에 몰입해 '경험'을 취할 수 있는데, <택시운전사>는 그 끓는 점도 늦고 어색하다.
그래도 송강호의 연기는 역시 일품이다. 대부분의 출연작을 봤는데도 <택시운전사>엔 '이 배우가 이런 얼굴도 할 수 있었나' 싶은 순간이 몇몇 있다. 각 배우들이 빛나는 순간들도 있고(사실 그런 순간이 없을 수 없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계속 생각해도 아쉬운 영화다. 좋은 재료는 잔뜩 챙겨 왔지만 정작 셰프가 자리를 비운 것 같은 느낌이다. 대체로 호평이 우세하고 분명 흥행도 성공하겠지만, 내게는 긴 시간 동안 공허한 영화로 남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