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공들인 공예품
<덩케르크>를 본 후 생각했다. 이제는 애정을 접어야 하는 걸까. 크리스토퍼 놀란은 존경받아 마땅한 감독이라도 이전부터 '재밌는 영화'에 애정이 넘쳤던 그 감독이 아닌 걸까.
이런 생각을 한 건 <덩케르크>는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기 때문이다. <덩케르크>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많은 결의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고 동시에 현장감까지 취했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시적 감성이 더해진 에세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 영화에서 '어떻게 관객을 즐겁게 할까'라는 고민이 전무한 것 같다. <메멘토>부터 <다크 나이트 라이즈>까지 놀란 감독의 작품에는 핵심적인 재미가 있었다. 이를테면 <메멘토>와 <프레스티지>는 플롯을 비틀어 관객에게 지적 유희를 주고, '배트맨' 삼부작은 상징적 존재를 현실(의 닮은꼴)로 승화시켰고 <인셉션>은 10년 넘게 구상한 만큼 간결한 구조를 겹겹이 쌓아 풍성하게 했다.
<덩케르크>는 아니다. 잘 만들어졌고, 이 영화 자체도 목적이 뭔지 알고 있다. 그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이걸 보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본다는 당위성은 충분히 주지 않는다. '영국뽕'이란 지적은 그런 데서 시작된다. 영화의 중심에 자리해야 할 핵심적 재미의 부재. 숭고함은 존재하지만 거기에 달할 때까지 카타르시스의 부재.
사실 <인터스텔라>에서도 이미 느꼈었다. 그 당시 놀란의 신봉자였던 터라 '거장이니까 한 번쯤은 하고 싶은 걸 해야지'라고 판단했다. 퀄리티는 있었지만 묘하게 재미가 없었다. <인터스텔라>는 SF지만 현실적인 요소들을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그게 <덩케르크>에서 반복됐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일체감'이 무너진 것을 이유로 삼았다. <인터스텔라>를 왕십리 아이맥스, <덩케르크>를 용산 아이맥스라는 최적의 극장에서 접했을 때, 두 작품 모두 몰입을 깨는 기술적인 불일치가 있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인터스텔라>에서 '아름다운 CG 우주와 우주선 미니어처의 질감 차이'를 느꼈는데, <덩케르크>는 '아이맥스와 필름의 온도차'로 기억될 것 같다. 단순히 화면비의 변화만이 아니라, 아이맥스의 쨍한 장면과 뭉개진 듯 온화한 필름 영상의 낙차는 오히려 거슬렸다.
경험자로서 '아이맥스 필름'의 놀라운 영상은 경탄이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의 톤을 생각하면 '배' 시퀀스들의, 자글거리는 필름미(美)가 가득한 쪽이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두 화면의 교차가 어딘가 전혀 다른 영화의 콜라주를 보고 있단 이질감을 계속 남겼다.
또 (리뷰에 어울리지 않는 관점일 수도 있지만) 용산 아이맥스라는, 놀란 감독이 원한 환경에서 영화를 접하면서 다른 극장에서 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다른 극장에서 봐야지, 라는 생각한 건 영화가 좋았다기보다 (위의 이질감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하나의 비율과 톤으로 구성된 상영본을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건 사실 '아는 사람만 신경 쓰는' 문제이다. 하지만 놀란 감독 스스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주의라면, 왜 자신의 작품은 모든 극장에서 통용될 수 없는 판본이 최종본이어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하게 된다. <인터스텔라> 때도 70mm 아이맥스 필름 상영에 목말라했던 국내 팬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래서 <덩케르크>는 그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에도 찝찝한 구석이 계속 남았다. 잘 포장된, 내용물도 좋은 선물상자라 해도 그걸 집어 드는 이에 따라 선물의 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덩케르크>는 적어도 뜯어보고 놀라워할 만한 선물이지만, 이전 작품들처럼 오래 간직하고 싶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