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다시 활기를 찾은 노장의 작품

by sothaul

SF영화라면 소식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마션>만큼은 참 소식이 느렸다. 예고편이 뜰 때쯤 ‘아, 이런 영화가 개봉하는구나’ 했고, 한 4차 예고편이 나왔을 때야 ‘리들리 스콧 감독 꺼였네?’라고 알았다. 오매불망 <프로메테우스 2>를 기다렸기에 조금 맹숭맹숭하였다.


그런데도 참 다행인 건 그런 맹숭맹숭한 기분, 기대해야 하나 싶었던 기분을 모조리 날릴 만큼 멋진 작품이란 사실이다. 그것도 요 몇 년간 “지나치게 ~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SF영화의 동향을 뛰어넘을 만큼.


물론 <마션>이 걸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원작을 모르고 봐도 꽤 잘 옮겼다고 느낄 ‘각색 작품’이다. 그래서 온전하게 그 구조와 특성에서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SF영화로서 흥행하고 있지만 그 반응이 폭발적이지 않은 건 그 지점에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어떤 흥분, 신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건 SF영화, ‘리들리 스콧의 SF영화’에서도 도드라지는 <마션>만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영화평론가들의 한줄평에서 말하듯 이 영화는 의외로 쾌활하고 긍정적이다. 어떻게 우주 난민을 그린 영화가 쾌활할 수 있는 걸까. 두 가지 특징에 기인하고 있다.

하나는 주인공의 성격이다. 하드 SF든 소프트 SF든 SF영화 주인공은 다소 어두운 캐릭터로 기억된다. 스톤 박사, 쿠퍼, 빈센트, 네오 등 인간 주인공은 물론이고 기억에 남는 캐릭터도 다스 베이더, 스미스 요원, 할 9000과 같은 어두운 면모를 가지는 편이다. 스콧 옹의 작품이야 데커드, 리플리, 데이빗 같은 인물들이 즐비하고. 그런 면에서 마크 와트니는 정말 아무런 소개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관객들 앞에 던져진다. 인트로에서 그는 그저 말 많은 수다쟁이처럼 보이다가 고립되고 난 후 전문가로 보인다. 관객이 동경하는 전문가적 자세와 동시에 기록을 남기면서도 농담을 섞어가고 희망을 놓치지 않는 점은 극도의 시너지를 낸다. 특히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장면들을 기존의 연출 스타일이 아니라 기록 카메라에 저장되는 영상 방식을 그대로 취해 마크가 건네는 독백식 대화를 구현한다. 관객은 그 대화 속에서 마크의 성격을 알게 모르게 공감하게 된다. 또 극의 70퍼센트 이상, 엄밀히 말하면 모든 극의 장치가 마크 와트니의 “행동”에서 시작한다. 때문에 이 영화 전체가 ‘마크 와트니의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매우 비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순간도 (마치 전염되어가는 하품처럼) 유쾌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족의 확장이다. 마크 와트니의 가족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마크와 NASA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물론 생존과 탈출이라는 전개상 가족의 이야기는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마크는 부모님 얘기를 단 한 번 꺼낼 뿐이고 심지어 지구와의 첫 통신에서도 부모님은 언급하지 않는다. <마션>은 의도적으로 가족의 단위를 넓게 확장하고 있다. 바로 마크의 팀원들까지로.

따지고 보면 뭐 당연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팀원들의 선택과 희생은 곧 가족영화에서는 익숙한 전개이고, 굳이 가족으로 설정하지 않더라도 그 정도는 팀원( 곧 친구)이니까,라는 설득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러나 2013년의 SF <그래비티>, 2014년의 <인터스텔라>와 <마션>을 동일한 선상에 둔다면 그 가족의 부재는 독특한 요소가 된다. <그래비티>의 스톤 박사는 가족이 없어서 의지를 잃어가고 있고, 반대로 <인터스텔라>는 부녀의 서로 간의 관심 덕에 인류를 구해내는데 <마션>에서는 있는 가족도 투명하게 처리해버리는 것이다. 이 흐름상에서 보면 <마션>은 더 이상 가족의 유무, 혹은 가족의 부재를 가족 단위의 확장으로 무마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보다 팀원을 찾는 마크, 공동체적 단위로 연설하는 NASA, 화성으로의 복귀를 결정하고 나서야 등장하는 팀원들의 가족 등 그런 의미를 내포하는 단서는 다양하다.

movie_image (1).jpg

이런 극 중 분위기에 맞춰 스콧 감독도 적잖게 연출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위에서 언급한 실제 카메라의 앵글 차용이나 타임랩스의 몽타주적 사용, 현대 음악 사용 등 스콧 감독의 전작들과 다른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물론 그래도 SF영화의 거장답게 퀄리티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했듯 단점 역시 뚜렷하다. 극 중 확실한 터닝포인트는 없이 계속되는 장소 변화는 영화의 긴장감을 다소 흔드는 경향이 있다. 초반부 마크의 생존기는 긴장감 속에서 유머를 섞으며 조절을 잘하지만 점차 NASA 내부의 문제로 확산되면서 그 긴장감이 와해되는 감도 없지 않다. 또 짧게 지나가는 인물 소개는 바이럴 영상을 안 본 사람들에겐 와닿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자막을 이용하는 외국영화다보니 빠르게 읽지 못하면 놓칠 가능성도 크고.


그래도 좋은 작품임은 확실하다. 초반부의 재미는 확실하고 극 중 맷 데이먼의 연기는 커리어 중에서도 단연 손꼽힐 만큼 좋았다. 감히 말하자면 그가 연기한 마크 와트니를 싫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또 변화한 리들리 스콧의 연출력 역시 일품이고, 무엇보다 이 만원의 화성 여행을 피할 필요가 있을까.

movie_image.jpg


매거진의 이전글매트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