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

시리즈를 존중하려다가 스스로 빠진 함정

by sothaul

다니엘 크레이그 이전 007은 본 적도 없으면서 이상하게 이번 시리즈는 <퀀텀 오브 솔러스>부터 꾸준히 극장에서 보았다. DVD로 뒤늦게 본 <카지노 로얄>이 가장 수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이번 작품이 공개된 이후로 계속 미적지근한 반응만 받고 있는 걸 알지만 <스펙터> 역시 오랜만에 아이맥스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평가들은 대체로 옳다는 걸 절감했다. 전반적으로 영화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상영시간에 비해 스토리도 빈약하고 볼거리도 많은 편은 아니다. 물론 <스펙터> 역시 로케이션의 아름다움, 차분하면서도 적당히 유머있는 분위기, 멋진 본드카와 예쁜 본드걸 등 기존 작품의 장점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스펙터>가 지난 9년간 이어진 “다니엘 크레이그 007”의 완결편과 같다는 점이다. 적당히 좋아서는 안 될 작품이란 말이다. <스카이폴>로 007 시리즈 전체를 방점을 찍었고 이제는 남은 이야기를 멋지게 끝내며 <퀀텀 오브 솔러스>에 모자랐던 부분까지도 채워줘야 했다.

movie_image 11111).jpg 리뷰 대부분이 이 오프닝 시퀀스를 최고로 뽑는다.

<스펙터>는 일종의 탐정놀이라고 볼 수 있다. 단서가 던져지고 주인공은 단서를 찾아 이동한다. 그러면 또다른 단서가 생기고 그 단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어떤 진실에 다다른다는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007 시리즈”는 일반적으로 이런 씬 구성을 갖는다. 먼저 장소에 대한 마스터 쇼트(과 자막), 그리고 007이 이동하는 몇 가지 쇼트, 그리고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몽타주, 그리고 또다시 마스터 쇼트. 이런 고전적인 편집구성은 템포가 굉장히 빠른 다른 액션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다. 이런 설명적인 구성이 007 시리즈를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하는 분위기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이 지나치게 반복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 과정이 좀 더 알차게 보여지려면 주인공이 끊임없이 위기에 겪거나 아예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야 했다. 그러나 <스펙터>에서의 007는 “날 사라지게 해줘”를 실현시킨 Q 덕분에 오히려 어떠한 압박도 받지 않은 채 자신만의 임무 수행을 해나간다. 007이 멀쩡하면 <스카이폴>처럼 본부가 위기라고 겪어야 하는데, 위기가 다가오는 걸 끊임없이 떡밥만 던질 뿐, 실제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007이 돌아온 클라이막스에서다. 그러다보니 <스펙터>는 전체적으로 템포가 느려지고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스펙터”가 내세운 계획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계획 자체는 문제가 없다. 정보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후 정보력을 통해 세계를 지배한다. 여기서 이 영화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건 ‘정보’가 물질로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정보가 얼마나 큰 권력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는 다 안다. 그러나 그 큰 권력으로 표현되는 ‘정보’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모른다. <스펙터>에서의 정보도 마치 모든 걸 부릴 수 있는 듯 포장되지만, 실제로 그들의 정보력은 나약한 악당들의 처지 덕에 제대로 힘써 보지도 못한 채 몰락하고 만다. 그 권력을 만들기 위한 ‘힘’은 매우 강력하게 그려지면서도 멍청하게 그 힘을 도리어 수단을 위한 수단으로만 쓰는 것이 관객에겐 어처구니없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문제는 “스펙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제작진 스스로 4부작(다니엘 크레이그 007)의 모든 배후를 스펙터로 지목하면서도 그 강력함을 무엇으로 표현해야할지 헤맨다. 그러다보니 그 수장인 ‘오버하우저’를 연기한 크리스토프 발츠의 캐스팅도 의문이다. <스카이폴>에서 실바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최소한 금발로 등장하며 기존과 다른 이미지로 관객에서 낯설음을 준다. 그러나 오버하우저는 그림자 속 실루엣으로 엄청나게 비밀스럽게 등장하면서도 그 뒷면엔 정말 익숙한 발츠가 존재할 뿐이다. 심지어 그에게 주어진 명분조차 그렇게 적당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등장했을 때의 위압감이 더 크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단점에도 <스펙터>가 정말 나쁜 영화인가. 모든 기대감을 접고 본 관객으로서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다소 처지긴 해도 여전히 만원으로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은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카지노 로얄> 때부터 줄곧 이야기의 완결을 기다려온 팬으로서는? ‘그렇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아쉬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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