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외부자로 만든 이분법
여기저기서 들려온 호평과는 달리 내게는 단점도 크게 다가왔다. 일부 평들은 ‘<베테랑>처럼 시대의 답답함을 청량감있게 날려준다’고 했지만 내가 느낀 이 영화의 흥행요소는 반대다. 시대의 더러움이 명배우들을 통해 재현됐다는 것. 그것도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서. 그것이 이 영화가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보인다.
이 영화는 <베테랑>과 길을 달리한다. ‘갑질’ 정도의 문제를 넘어 사회 속 정경유착을 정면으로 묘사하는 것과 주동인물 중 범죄자가 있다는 것이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다. 분명 이 영화가 가진 진취적인 접근법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은연중에 커다란 이분법을 남긴다. 보수-중장년층-권력층은 변태적 욕망의 노예이나 진보-청년층-노동자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묘사를 통해. 이 지독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지는 순간 이 영화가 가진 허상, ‘순수한 정의는 승리할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은 단순한 망상으로 드러난다.
영화를 천천히 복기해보면 이 영화 속 인물들 중 ‘섹스’에 미친듯이 홀린 인간은 전부 늙은 권력층이다. 그들은 젊은 여성들을 부리며 술자리에서 성기로 농담 따먹기나 한다. 반면 이 영화의 젊은 인물들은 정말 여자라곤 관심도 없어보인다. 깡패인 안상구조차 볼뽀뽀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 유장훈이나 악당인 조상무는 아예 여자와의 관계를 그려지지 않는다.
좌파적인간인 나조차 이 방법은 꽤 치사해보였다. 아직도 성관념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이분법으로 악당을 묘사한다는 건 비겁하게 느껴졌다. 늙은 남자배우가 벌거벗는 것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릴 관객이 있을 텐데 그런 인물들이 모여서 변태짓을 하는 걸 그리다니. 영화적인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자극해 분노를 사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것이 실제로 현실임을 모르는 건 아니다. 또 원작에 기반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언어를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부분을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저 재밌다고 넘길 것이 아니라 다시 고민해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지점만 넘는다면 영화는 꽤 그럴싸하다. 연출 역시 호흡을 길게 빼지 않고 적당히 치고빠지기를 잘하고, 배우들은 과연 명배우들답게 주조연 가릴 것 없이 훌륭하다. 액션장면이 많진 않지만 재치있게 표현돼서 인상깊기도 했다. 다만 극 후반에 힘이 빠졌는지 다소 지루해지는 것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