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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모두를 외부자로 만든 이분법

by sothaul

여기저기서 들려온 호평과는 달리 내게는 단점도 크게 다가왔다. 일부 평들은 ‘<베테랑>처럼 시대의 답답함을 청량감있게 날려준다’고 했지만 내가 느낀 이 영화의 흥행요소는 반대다. 시대의 더러움이 명배우들을 통해 재현됐다는 것. 그것도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서. 그것이 이 영화가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보인다.


이 영화는 <베테랑>과 길을 달리한다. ‘갑질’ 정도의 문제를 넘어 사회 속 정경유착을 정면으로 묘사하는 것과 주동인물 중 범죄자가 있다는 것이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다. 분명 이 영화가 가진 진취적인 접근법은 인정해야 한다.

2222.jpg 검사와 범죄자의 조합을 잘 소화해낸 두 배우

그러나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은연중에 커다란 이분법을 남긴다. 보수-중장년층-권력층은 변태적 욕망의 노예이나 진보-청년층-노동자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묘사를 통해. 이 지독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지는 순간 이 영화가 가진 허상, ‘순수한 정의는 승리할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은 단순한 망상으로 드러난다.


영화를 천천히 복기해보면 이 영화 속 인물들 중 ‘섹스’에 미친듯이 홀린 인간은 전부 늙은 권력층이다. 그들은 젊은 여성들을 부리며 술자리에서 성기로 농담 따먹기나 한다. 반면 이 영화의 젊은 인물들은 정말 여자라곤 관심도 없어보인다. 깡패인 안상구조차 볼뽀뽀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 유장훈이나 악당인 조상무는 아예 여자와의 관계를 그려지지 않는다.

33e.jpg 백윤식은 특유의 화술로 '말이 권력이다'라는 이강희를 정확히 묘사한다

좌파적인간인 나조차 이 방법은 꽤 치사해보였다. 아직도 성관념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이분법으로 악당을 묘사한다는 건 비겁하게 느껴졌다. 늙은 남자배우가 벌거벗는 것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릴 관객이 있을 텐데 그런 인물들이 모여서 변태짓을 하는 걸 그리다니. 영화적인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자극해 분노를 사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것이 실제로 현실임을 모르는 건 아니다. 또 원작에 기반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언어를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부분을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저 재밌다고 넘길 것이 아니라 다시 고민해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지점만 넘는다면 영화는 꽤 그럴싸하다. 연출 역시 호흡을 길게 빼지 않고 적당히 치고빠지기를 잘하고, 배우들은 과연 명배우들답게 주조연 가릴 것 없이 훌륭하다. 액션장면이 많진 않지만 재치있게 표현돼서 인상깊기도 했다. 다만 극 후반에 힘이 빠졌는지 다소 지루해지는 것은 아쉽다.

1111.jpg 그래도 이병헌의 삼단변신은 이 영화 최대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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