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요컨대 덕질을 하다보면 한 번쯤은 ‘아, 내가 외국인이었으면’하는 순간들이 온다. 어릴 적 프로레슬링을 실제로 보고 싶다고 느꼈을 때나 엄청 좋은 평을 받는 게임이 한글화가 안 되었거나. 그러나 이번처럼 단 한 작품만으로 ‘내가 미국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느낀 경우는 없었다. <헤이트풀 8>은 바로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준다.
물론 <헤이트풀 8>은 (지나치게 얌전하지만) 번역도 꽤 잘 돼있고 어쨌든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다보면 분명 한국인으로도 100% 이해 안 되는, 혹은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부분들이 보인다. 이 작품을 별로라고 생각하면 이런 부분들도 쉽사리 지나가겠지만 흥미를 느낀다면 이 부분들을 만끽할 수 없다는 걸 탄식하게 된다.
단도적입적으로 이 영화는 ‘웨스턴’이다. 미국의 시대극이다. 그리고 타란티노는 (전작에서 그랬듯) 이 영화 속 인물 하나하나에게 그 역사에 적합한 캐릭터성을 부여한다. 그들의 억양, 사상, 행동 등은 모두 당시 시대상과 지역 특색에 맞게 구축돼있다. 그 각각이 자체로도 색깔을 내기는 하지만 기본 지식이 있다면 훨씬 더 재밌을 것으로 보인다.
간단한 예로 오스왈도(팀 로스 분)가 잡화점 내부를 미국 각 지역으로 구분할 때, 그것은 미국의 기본 지식이 있는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긴장감-재미(내가 이해를 못했기에 그것인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다)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내내 제시되는 'Black-Nigger'의 차이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런 지식이 없어도 <헤이트풀 8>은 그야말로 완벽한 영화다. 영화로서의 예술을 극치로 끌어당기고 있다. 오프닝롤에서부터 느껴지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점차 속도감이 느껴지는 전개는 호불호는 갈릴지라도 굉장한 장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난 타란티노 작품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구체적인 평가는 어울리지 않다. 굳이 뽑자면 배우들의 연기,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작중 유쾌하면서 서늘한 분위기 등 그가 항시 배치시켰던 장점들과 몰입감이 그대로 있는 편이다. 그 요소들이 이 영화를 ‘걸작’에 올려놓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타란티노의 팬들에게는 흡족한 선물임은 틀림없다.
여러 가지 작품에 비유되고 있는 작품인 만큼 혼합적인 느낌을 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추리극이라기엔 허술하고 단순한 스릴러라기엔 다채로운 이 매력의 영화를 나는 '타란티노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명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