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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즈

광기가 필요하다며 관객에게 친절하길 포기하다

by soth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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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즈>가 정말 좋은 작품인진 확신할 수 없다. ‘지옥에서 온 웨스 앤더슨’이란 평가도 나쁘지 않지만, 대략 한 시간 지점이 넘어가면 마치 다른 작품처럼 변모하는 탓에 그 문장도 완벽하게 이 작품을 표현했다고 보긴 어렵다.


여러 면에서 <설국열차>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설국열차>가 수평의 기차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면 <하이-라이즈>는 수직으로 세워진 고층 건물을 통해 시스템 속 인간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 대놓고 ‘계급’에 대한 통찰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리고 필자에겐 “초반 1시간이라면 만점짜리인데”라는 아쉬움을 준 것마저 동일하다.


<하이-라이즈>가 초반부에 보여주는 미쟝센은 무척 인상 깊다. 정갈한 디자인과 정적인 카메라워크를 빠른 몽타주로 엮으면서 극의 이미지를 단박에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운드나 액션을 통해 전 컷과 다음 컷을 계속 영향을 주는, 이른바 ‘혼돈’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도 적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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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출은 중반을 넘어가기 전까지 유효한 편이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고층 빌딩과 익명성, 은근한 계급사회가 SF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기에 화면 속 복고적인 요소와 깔끔한 연출의 모던함이 잘 녹아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붕괴되는 지점부터 영화는 급속도로 고삐를 놓은 느낌을 준다. 상세하게 풀어져야 할 과정을 몇 분의 몽타주로 풀어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던 관객들에게 의아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쁜 건 아니다. <하이-라이즈>의 주제는 그 과정이 아니라 과정을 전후로 한 인물들의 모습에 담겨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좋은 방법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인물에게 몰입한다는 건 결국 그 과정에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로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강렬한 스타일의 몽타주는 무척 인상적이지만 언뜻 보이는 장면들이 깊은 내용을 담고 있을 것임이 직감되기에 더욱 아쉬움을 준다. 예컨대 결말에 이르기까지 로버트 랭(톰 히들스턴)의 정서들 중 일부가 그 몽타주에서 지나가는 것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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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몽타주를 기점으로 영화는 주인공마저 바뀐 듯 군다. 로버트 랭을 중심으로 풀어지던 이야기(혹은 설정)가 리처드 와일더(루크 에반스)의 집념으로 전개가 되고, 로버트 랭은 결국 방관자처럼 얘기에서 동떨어져버린다. 그래서 영화의 질감도 바뀌는 걸 넘어 낯선 영화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이-라이즈>가 다루고 있는 얘기 자체가 쉽지 않다. 사회와 계급, 개인과 전체, 무의식 속의 신경쇠약 등 다양한 해석 방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줄기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대다수의 관객이 영화를 ‘스토리’를 따라 보는 편임을 고려하면 <하이-라이즈>의 불친절함은 다소 무책임하게까지 느껴진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배우들의 열연에 걸맞은, 촘촘한 이야기까지 겹했더라면 어땠을까.

movie_image (4).jpg 그래도 <하이-라이즈>는 시스템을 보며 냉소를 지을만한 특유의 유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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