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유로도 표현할 순 있어도 구현할 수 없는 고유의 것
각자 살면서 느끼는 삶이나 세상의 판단은 다 다르다. 기본적으로 긍정적, 부정적 혹은 외향적, 내향적인 성격에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가족이나 환경에 따라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은 절대로 단면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룸'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세상을 묘사한다. 오랜 시간 감금돼 살아온 모자(母子)의 이야기를 7살 아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극도의 분노를 자아내는 상황에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한다. 마치 7살 아이가 텔레비전으로 본 세상을 마주하듯이.
그 결과 이 작품은 담담한 시선으로도 '인간찬가'를 형상화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사실은 엄청 유별난 사건임에도 그렇게 독특하지 않은 듯 받아들이는, 이후엔 반대로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일을 기적처럼 느끼는 모자를 지켜보고 있자면 표현하지 못할 깊은 여운이 남는다.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혹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순 있다. 그러나 예술작품으로서는 그 중도의 시선을 지키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 중간은 때로 비루하기도 하고, 객관을 위한 무의미가 되는 경우도 많다. 작품으로 한 시선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 관객에게도, 제작하는 이에게도 보다 편한 영화가 나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룸'은 그 중도의 시선을 의미있게 담는 데 성공한다. 잭이 '방의 벽에 닿으면 반대 벽으로 달렸고, 그래서 좁지 않았다'는 말과 시퀀스는 마치 이 영화 내에서 극과 극의 감정을 경험하는 관객의 심정과도 같다. '룸'을 통해 관객은 (범죄자를 향해) 분노하고, (두 사람을 위해) 걱정하며, (마침내는) 기뻐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단순히 '재미'로 요약되지 않는 이 감정의 흐름은 무한한 체험으로 와닿는다.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이 영화의 시각적인 부분, 청각적인 부분은 배우에게 꽤 큰 빚을 지고 있다. 내레이션부터 섬세한 연기까지 가능한 7살 꼬마를, 그것도 사실상 '완전체'라고 이를 만큼 대단한 소년을 캐스팅했기에 '룸'은 시작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처음에 두려웠지만 점차 세상에 발돋움하는 소년과 그리워했지만 막상 불안감이 솟구치는 엄마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은 솔직한 시선으로 스크린에 풀어진다. '힐링'이란 말로 포장된 억지 위로가 아닌 진짜 위로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삶이 갑갑하다고 느낄 때면 꺼내들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