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작품으로 거듭나는 동안 모여든 무리수들
메인포스터를 보고 기대감을 버렸다가 캐릭터포스터에 기대치가 올랐던 기묘한 영화였다. 또한 ‘시간’이란 말이 들어간 이상 여러 모로 필자를 만족시키기 힘들 것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SF 장르를 꽤 좋아하는데다 ‘닥터 후’ 뉴 시즌을 전부 본 필자로서는 웬만한 ‘시간’ 소재는 흡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시간이탈자>는 그 시간의 개념보다는 멜로와 미스터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엄밀히 말해 ‘타임리프’가 아니라 ‘꿈의 공유’라는 개념으로 서로의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주인공들이기에 일반적이 시간 여행물과는 궤도가 다른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만족스러웠느냐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이 영화를 본 후 주변 커플들에게 꼭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했다. 솔로인 필자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물론 다들 필자의 표정에서 이 ‘추천’의 이유를 읽고는 이 영화를 피했다). 뭐가 문제였냐고 묻는 것보다 뭐가 장점이었는지를 뽑는 게 더 빠른 작품이다.
일단은 ‘감성스릴러’라는 말답게 이도저도 아닌 것이 이 영화의 최고 패착이다. 스릴러로서의 쫄깃함은 어느 순간 어처구니없는 전개로 단순한 공포물로 변모되고 반대로 감성멜로적인 면은 배우들의 외면과 연기에만 의존한 채 그 특유의 끈끈함이 전무하다. 극중 사건의 단서를 설명하던 건우(이진욱)가 소은(임수정)에게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사이에 어떤 앵글의 전환이나 분위기의 변화 없어 그야말로 실소가 나올 만하다. 물론 그 장면의 의도, 사건이 풀리는 듯한 기분과 소은에 대한 건우의 진심이 미묘하게 결합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건 알겠지만, 문제는 이 장면만이 아니라 이런 식의 장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 여자의 죽음으로 시작된 1983년 일련의 연쇄살인 사건의 진중함과 반대로 사건을 통해 만난 남녀의 사랑, 그리고 홀로 83년에 맞서야 하는 지환(조정석)의 비장함이 사실은 무척 진지하면서도 달콤했어야 하는 것이 가능했느냐는 것이다. 포스터나 시놉시스로 볼 때는 ‘두 여자가 한 여자를 구하는 과정’이라지만 실제로는 이미 83년의 윤정(임수정)은 죽어서 되돌릴 수 없는 상태이다. 사건은 생각보다 광활하고 그 안에 다뤄야할 내용은 ‘사랑’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이탈자>는 그래서 그 많은 내용을 빠르게 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생략한다. 사건의 대부분은 설명되지만 해결되지 않는 건 너무나 많다. 이해는 되지만 공감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작품화하려고 한 것처럼 무리한 설정과 전개가 비일비재하다. 그게 서너 번 반복되다보니 감동이랄 것도 결말보다 먼저 휘발되는 신기한 경험을 준다.
팬들은 즐거울지도 모른다. 조정석은 늘 그랬듯 스크린을 휘어잡는 연기를 보이고, 임수정은 1인2역을 통해 전혀 다른 매력을 한 작품에서 발산하며 이진욱은 그 특유의 감정연기로 작품의 분위기를 책임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매력이 기대고 있는 영화의 위태로움이 먼저 보였으며 이 책임은 전적으로 작품에 각색도 담당한 곽재용 감독에게도 있다고 본다.
‘시그널’을 안 보긴 했지만, 글쎄, 잘은 몰라도 이 작품과 ‘시그널’을 비교한다면 그건 꽤 무례한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나는 드라마임에도 몇 주동안 화제를 모았던 작품인데 반해 하나는 2시간이란 시간조차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