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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Jun 14. 2016

곡성

몇 번이고 속아줄 수 있는 허망한 꿈

영화는 닫혔는가, 열렸는가. 관객 개개인의 ‘영화’라는 정의가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에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문제를 영화 <곡성>은 자신만의 해법으로 풀어냈다. 닫혀있는 것을 조합해 열린 것을 만든다, 그것이 <곡성>만의 대답이었다.     


상업영화지만 그 지향점은 마치 신비주의로 향하고 있는 듯한 이 영화는 그럼에도 굉장히 빼어난 미장센을 선사한다. 기존 나홍진의 두 편과도 다르고 최근 한국영화가 지향하는 작품의 전반적인 형상과 전혀 다른 <곡성>은 고전적인 영상미를 담고 있다. 최근 상업영화가 빠른 편집, 인물에 꽉 차는 프레임을 만든다면 <곡성>은 정반대로 멀찍이 떨어진, 그리고 인물보다 그 주변 층(레이어)를 영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고 그 테크닉이 떨어지느냐, 그건 또 아니다. <곡성>은 상영시간 내내 집요할 정도 섬세한 트래킹 쇼트들로 관객들이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마치 동굴로 들어가는 발걸음처럼 무겁지만 분명하게 카메라는 그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카메라워크 전에 프레임 내에 층을 만들어 깊이를 부여한다. 트래킹과 레이어의 만남은 지독하게 관객의 눈을 홀린다.     


그것 뿐인가. 마지막까지 보게 되면 이 영화에 숨겨진 해답은 편집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장면들이 다시 해체되어 알맞은 자리에 들어갈 때, 관객은 ‘속았다’라는 쾌감을 얻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론 굿 장면이다.     


영화 대부분 이렇게 인물은 층과 층 사이에 존재한다.


이렇게 고전적인 미장센과 현대적인 기술을 적합하게 배합한 <곡성>은 사실 영화 내적인 전개도 의외로 닫힌 구성을 가지고 있다. 다소 혼란스런 내용은 영화 막바지에 거의 정리되는 셈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이루는 요소 자체가 종교와 부조리에 기반을 두고 있어 마치 열린 것 같은 착각을 줄 뿐이다.     


신기한 건 이 두 가지 닫힌 요소, 내적인 구성과 외적인 형태가 합쳐지면서 끝없이 확장되는 영화로 거듭난다는 점이다. 동양적인 주술과 서양적인 종교론의 결합은 물론이고 한국의 역사적인 흐름, 공권력과 사적인 삶의 충돌 등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곡성>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떠나 그저 ‘아버지’의 투쟁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추격자>나 <황해>에서 주인공들이 무척 강인한 존재였음을 떠올린다면 이건 ‘존재의 투쟁’가 아닌 ‘투쟁의 존재’를 담고 있다고 접근할 수도 있다.     


무명(천우희 분)을 그렇게 롱쇼트로 소개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영화 내내 그려지는 관계의 역전과 미심쩍음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징, 유머러스함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방향성까지 <곡성>은 기대 이상으로 삶과 생의 부조리를 치밀하게 담아낸다.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문장(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같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을 이토록 잘 구현해낸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특히) 드문 편이다.

나홍진 감독이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이 작품에는 그가 고민했을 그 삶의 무게가 섞여있다. 때로는 유쾌하게, 그러나 그 저변에는 이미 뼈 아픈 고통이 가해지는 <곡성>처럼 관객들의 삶은 알 수 없는 순간들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나홍진 감독은 그를 '불가항력'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렇게 될 뿐이라고.


그래서 <곡성>은 많은 이들에게 흥미와 함께 논쟁을 불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름다운 화면을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과 태도는 분명 허망함을 내포하고 있기에. 애초에 허구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그럴싸해보이게끔 풀어내고 있기에.


하지만 그리스식 운명론적 비극을 새롭게 한국에 풀어낸, 그것도 (자신들이 지향한 영상 구조처럼) 수많은 레이어를 쌓아둔 이 이야기를 미워할 수는 없다. 얄팍한 속임수라도 때로는 속아주는 것이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곡성>이라면 두고두고 속아줄 수도 있다.


이 장면은 다소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의 느낌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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