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의 서막이 막장이 될 위태로움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이하 워크래프트)'는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다. 어쩌면 로튼토마토에서 받은 20%는 다소 가혹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생각보다'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로튼 퍼센트가 20%대를 오락가락하고 온갖 혹평이 쌓여 기대감이 바닥을 쳤을 때에도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최소한 장점보다 단점을 뽑는 것이 빠르다는 것부터 문제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비교할만큼 정통 판타지의 계보를 이으려고 한다는 것부터 삐그덕거리는 첫 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이세계, 다양한 종족의 모습, 대규모 전쟁을 제외하면 '워크래프트'는 애초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계열이 아닌 셈이다.
일단은 '워크래프트'는 영화의 질감을 전혀 찾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RTS였던 '워크래트2', RPG 장르를 복합시킨 '워크래프트3', MMORPG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게임 장르의 맛을 못 살린 건 의도였다고 치자. 그러나 지나치게 매끈한 묘사들로 영화 '워크래프트'의 세계는 오히려 생명력을 잃은, 시네마틱 영상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애매한 영상들이 이어진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엉망으로 구현된 스토리'의 문제가 합해지자 세계의 몰입도가 유지되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인물이 많아 중구난방, 그리고 그 중 주인공들의 기묘한 '쿨병'이 심하다. 이것은 인물 자체나 배우보다 영화가 인물을 그리는 방법이 문제이다. '워크래프트'는 영웅담이라고 하기엔 정석적이다. 희한할 정도로 요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고속촬영,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이 없다. 그래서인지 인물의 심리를 그리는 디테일한 쇼트들이 적어 빠른 교차편집에 비해 그 감정선을 이어갈 충분한 몰입도를 관객에게 선사하지 못한다. 스포일러로 말할 수 없지만 로서에게 가장 중요한 그 사건에서 이처럼 어색한 심리묘사를 본 적 있나 싶을 정도다.
액션씬에서도 호쾌한 타격감을 보여주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민이 없는 장면들이 즐비한다. 예컨대 액션에도 힘, 순발력, 스피드, 지략 등 특색이 있고 그걸 대규모로 확장하면 다른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워크래프트'는 오크의 거대함과 힘, 그리고 인간의 중장갑을 마주하게 해 결국 '묵직함'으로만 승부를 본다. 때때로 그럭저럭 괜찮은 액션도 블록버스터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워크래프트'의 장점은 빼어난 비주얼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게임 팬이라면 열광할만한 지역들의 모습, 정확하게 구현된 오크의 존재감은 문외한에게도 '충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또한 온갖 마법에 대한 장면들은 전부 명장면으로 봐도 좋을 정도다. 그동안 '반지의 제왕'이 농담조로 들었던 '간달프는 법사인데 왜 마법 안써요?'라는 아쉬움을 '워크래프트'는 완벽하게 채워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서사시라고 하기엔 그 숭고함이 실리지 않은 채 하나의 모험담 정도로 그려진 '워크래프트'. 아직 감독판이란 희망이 있기는 하지만, 블리자드-레전더리의 조합이 그다지 현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극장판을 통해 드러난 셈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궤도에 오를 '워크래프트'의 속편이 장단점을 제대로 걸러낼 수 있을지 관객들이 기다려줄지 걱정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