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과 기만으로만 완성된 영화
영화를 좋아하기에 한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가급적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편이다. 예컨대 영화는 재미가 없을 수도, 엄청나게 못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럼 그건 그것대로 그 영화의 특성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냥>을 보고는 오랜만에 분노했다. 이토록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이렇게 '텅 빈 강정'을 만들다니.
<사냥>의 좋은 점은 대체로 배우들의 것이다. 안성기와 조진웅, 한예리를 비롯해 인물을 깊게 묘사해낸 건 누가 봐도 다른 누군가의 지도가 있다기보다 온건히 배우들이 만들었다는 게 확연히 보인다. 때때로 어색한 연기야말로 배우들이 자신의 것이 아닌 연기법을 억지로 따라하게끔 지도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만일 이 영화가 보면서 느꼈던대로 마무리만 됐어도 이렇게 분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산이란 공간, 생존의 문제, 죄책감과 탐욕, 다방면으로 해석되기 좋은 소재들을 붙여놓고도 멍청한 결말을 내리지만 않았어도 <사냥>의 의미는 훨씬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냥>엔 마치 영화를 처음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멋있는 액션 영화에 철학적 의미를 가미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아무거나 집어넣고 마무리를 짓지 못한 느낌이 농후하다.
철학적 테마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것.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그 점은 실수로 볼 수도 있다(물론 엄청 너그럽게 봐야지만). 그러나 <사냥>은 액션영화로서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멍청하다. 직접 전국의 산을 헌팅하면서 찾았다고 하지만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을 보면서, 그리고 추격전이지만 전략이라곤 전혀 없는 인물들을 보면서 이 영화가 얼마나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제작에 들어갔는지 눈에 보일 정도다.
액션 영화는 찍고 보면 생각보다 많은 분량을 뽑기가 어렵다. 느린 액션이 아닌 이상 한 줄의 문장에 3~4초에 지나가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시나리오 단계에서 더욱 촘촘한 계획이 필요하고, 추격전이라면 더욱 전략적인 요소들이 배치돼야 한다.
하지만 <사냥>은 그런 전략이 배제된, 그야말로 달리고 총 쏘는 것에서 끝난다. 아주 기발한 생각이 한 번쯤은 등장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관객들은 <사냥>에게 등을 보이기에 충분하다. 설령 그 장면이 좋다고 해도 90분의 영화에서 단 5분 정도만 반짝일 뿐이다.
그러니까 영화 <사냥>은 중심점이 없다. 자신이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있기에 이도 저도 아닌, 잡탕 중에서도 초콜릿과 된장찌개를 섞은 듯한 느낌을 준다. 상상만 해도 맛이 없다는 게 훤한 느낌이다. 이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비화들을 차치하더라도, <사냥>은 결코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