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돼가는 존재의 미학
정신적인 치유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 '동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적으로 봤을 때 접근법 말고도 과연 이런 이야기가 스크린 밖에 우리에게 '치유'라는 것을 납득시킬 수 있는지. 다행히도 필자는 <데몰리션>의 미학에도 감명을 받았고, 그 과정에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었다.
사실 <데몰리션>은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 어느 정도 한계점이 보이는 편이다. 전개가 어느 정도 추측될 수도 있고, 그 메시지도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만일 스토리를 읽고 이 영화가 보고싶다고 느낀다면 적어도 그런 지점들을 느껴봤을 사람일 거고, 그런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꽤 매력을 느낄 것이다.
이 영화의 딱 돋보이는 장점은 세 가지 정도 뽑을 수 있다. 첫째는 배우들의 명연. 제이크 질렌할은 물론이고 나오미 왓츠나 유다 르위스의 연기 시너지는 영화 내내 어떤 삐걱거림도 없이 완벽하다.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이 초반에 무감각한 연기를 펼칠 때, 이전 작품과 유사하단 생각이 들곤 하지만 두 사람과 만나게 되면서 변화하는 모습은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힘을 만들어낸다.
동정심과 애정 사이를 미묘하게 걷는 나오미 왓츠나 순수하면서도 외적으로 끊임없이 위장하는 유다 르위스, 그리고 딸을 잃고 사위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크리스 쿠퍼의 연기까지. <데몰리션>의 다소 비정상적인 이야기는 이들에게 힘을 얻기도 한다.
다음으로 '파괴된 순간의 아름다움'. 찰나의 순간들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파괴되는 건 물건만이 아니다. 데이비스 역시 아내를 잃은 후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 순간에 찾아드는 '상실'을 <데몰리션>은 (어찌보면 정말 나쁘게도) 아름답게 포착해낸다. 공백의 사운드, 극적인 클로즈업이나 화면 구성 등 이때의 짤막한 몽타주는 보는 사람까지 숨을 멎게 하는 먹먹함과 추억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또 하나는 바로 음악. 음악영화는 아니지만 데이비스의 버릇(출근길 음악듣기)부터 전개에서도 꼼꼼하게 음악을 사용한 <데몰리션>은 최근 영화 중에서도 인상적인 삽입곡들을 보여준다. 장르적으로도 다양하게 쓰이는 편이고 쓰이는 장면들도 모두 큰 감흥을 주기 때문에 나오면서 OST를 떠올릴 정도이다.
이 모든 게 안정적으로 결합된 <데몰리션>은 '역대급'이라기엔 다소 약하지만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공허함부터 슬픔과 재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성실하게 짚어낸 제이크 질렌할과 함께 빈 마음을 채우는 건 무척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