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영리한 줄 알았는데….
- <부당거래>와 <베테랑>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론 시사회 후 공개된 반응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처음 기획의도나 시놉시스가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형사 황정민"라는 점과 "형사물"이란 것 때문에 류승완 감독의 전작 <부당거래>와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언론시사회 후, 그리고 개봉 후에도 대부분의 평은 <공공의 적> 시리즈과 비슷한 선상에 놓으면서 확연히 다른 색을 강조했다.
그런 평가에 물론 동의한다. 열혈이란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는 형사가 사회적 보호 안에 있는 악당을 무너뜨린다. 그것도 통쾌하게. 누가 뭐래도 지금의 형사물, 그러니까 <살인의 추억> 이후로 이어져오던 '상처 있는 형사물' 이전의 것들을 닮았다고 하기 충분하다. 그럼에도 내게 그 이상으로 <베테랑>의 존재감이 컸던 건 영화 화 곳곳에 깔린 단서들을 통해 드러난 영화의 의도 때문이었다.
이것은 <부당거래>의 완벽한 안티테제이자 연장선이다.
그렇게 느꼈던 이유는 두 장면에 있다. 먼저 초반부 부산항 장면이다. 여기서 서도철 형사팀은 러시아 범죄조직을 덮치는데, 그 과정에선 정속-변속의 커트가 교차된다.
이런 슬로우 모션으로 이루어진 몽타주는 류승완 감독의 전작 <짝패>의 액션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기법은 철저히 영화적이다. 오로지 카메라를 통해서 정해진 프레임과 촬영이란 과정을 통해서만 발생하는 시간 차이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 어떡해”라는 배경음악과 상황의 통쾌함 때문에 그저 재밌는 장면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부당거래>, <베를린>으로 이어진 류승완 감독의 이전 작품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 영화적인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감독이 은근히 강조하였다고 느꼈다. 이 영화가 “영화”라는 점을.
이런 느낌을 또 받았던 건 바로 우리의 아트박스 사장, 마동석의 등장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서도철을 쓰러뜨리고 빠져나가려는 조태오를 가로막는 사람이 하필 마동석이라니. 그것도 그 덩치에 안 어울리게도 ‘아트박스 사장’이라고 소개하다니. 스마트폰으로 촬영이나 해대는 군중 사이에서 그는 정말로 사고 칠 거 같은 모습으로 악당 앞에 나선다. 뜬금없지만 분명히 구세주적 역할을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서도철이 일어나서 조태오를 상대할 수 있게 되자 그는 바로 사라진다. 이 일련의 과정, 배우로서 이미지가 확고한 마동석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졌고 무언가 일을 만들 것 같지만 그저 시간을 끄는 행인 1이라는 점. 무척 코미디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코미디와는 다르게 영화 외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 부분도 역시 “영화”임을 강조하는 감독의 의도라고 느꼈다.
이 두 장면의 의도, 즉 이 영화가 “영화”임을 강조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 이상 <베테랑>은 통쾌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라는 “판타지”를 통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현실에선 접하기 힘든 정의구현을 상상했다는 냉소적인 영화가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내용이 <공공의 적>일 수는 있지만 그 태도는 <부당거래>에 가깝다. 결국 변하지 않는 현실을 그저 시원한 이야기로 포장했을 뿐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당거래>의 안티테제라는 것은 확실하다. 가짜 범인을 찾는 형사-진짜 범인을 잡으려는 형사, 권력으로 대변되는 검사-돈으로 대변되는 재벌, 팀원까지 속이게 되는 <부당거래>의 전개-팀이란 단위가 돋보이는 <베테랑>의 전개 등 두 작품의 외면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위의 논리, 즉 “이 영화는 영화며 이것은 영화로만 실현되는 이야기다”라는 관점에서 <베테랑>을 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풍자에 가까워진다. 이랬으면 좋겠지만 이럴 수가 없는걸, 씁쓸해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베타랑>이 흥행하고 곳곳에서 인터뷰 기사가 뜨면서 이 해석은 적당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마동석이 애초 다른 캐스팅이었고 ‘아트박스 사장’ 역시 그의 애드리브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해석의 기반이 요소들이 결국 우연이었기 때문에 위에서 전개했던 분석은 결국 틀린 답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 요소들이 ‘감독의 계산’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도리어 <베테랑>에 실망하고 말았다. 내용과 형식의 상이함이 제대로 계산된 부조리 영화가 아니라 결국 통쾌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영화고 나 역시 그 통쾌함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의 팬으로서 그를 위대한 감독으로 보였던 요소들이 허구라는 것임을 알게 된 건 모르는 게 약이라는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