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운명으로의 돌주

by sothaul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좋은 영화는 많이 만날 수 있지만 흠잡기 힘든 영화는 드물다. 이 영화는 전자임과 동시에 후자였다. 106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타임도 있지만 그걸 제하고 살펴봐도 훌륭한 몰입감으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위플래쉬」는 강력한 힘을 가진 영화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취하는 태도다. 나쁜 선생과 노력파 학생. 여기까지만 들으면 적당히 좋은 성장영화라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나 그 두 인물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여 「위플래쉬」는 전혀 단순하지 않은 영화로 거듭난다. 한 명은 도대체 진실해 보이지 않게, 반대로 한 명은 마치 관객의 분신인 듯 최대한 자세하게.

앤드류-플레처의 관계는 유사 가족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그런 면에서 한층 더 나아간다. 두 아버지의 사이에서 갈등하다 마침내 예술가로의 아버지(플레처)를 선택하는 것 같은 모양새이지만 이 영화에서 양부(플레처)/생부라는 이분법적 개념은 옳지 않다. 플레처는 친절한 척 앤드류에게서 정보를 뜯어내고 그것으로 그를 조롱한다. 그러면서도 션 케이시 얘기를 하며 따뜻한 면모를 드러낸다. 반대로 앤드류의 생부는 어떤가. 그는 아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족 모임에서 대놓고 면박을 줄 정도로 앤드류의 재능에 믿음이 없다. 그래서 앤드류는 홀로 남겨진 고아에 더 가깝다. 클라이맥스 직전에서야 두 아버지의 면모가 드러난다. 하나는 조롱으로 하나는 포용으로. 그러나 앤드류는 둘 중 어느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신호를 하고 비로소 진짜 연주를 시작한다.


이 영화가 다른 성장영화와 궤도를 달리하는 건 성장의 개념이 아니라 각성에 개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첫 쇼트가 무엇이었는가. 앤드류가 늦게까지 혼자 연습하고 있는 장면이다. 플레처가 앤드류를 발견한 것도 이미 그는 준비된 자세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성취해낸 결과물인 여자친구마저 버릴 정도로 예술가로서의 각오가 있다. 게다가 그는 왕따다. 기숙사에 들어갈 때 뒷모습으로만 묘사되듯 교내에서 누군가랑 친하게 대화하는 장면마저 없다. 홀로 연습하고 싸우며 관철해나갈 뿐이다. 모든 건 앤드류 스스로의 각성을 위한 과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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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처음에 암전상태에서 드럼 소리와 타이틀로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연습하는 모습을 서서히 트랙인하며 다가간다. 그러나 연습곡이 절정에 치닫는 순간, 플레처가 등장한다. 이 부분. 이 영화가 극도의 긴장감 섞인 클라이맥스를 만드는 건 그 전까지 음악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앤드류가 대타로 무대에 설 때도 그 음악을 끝까지 들려주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을 보여준다. 때문에 클라이맥스가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건 (앤드류가 주도하는 것도 포함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가 고스란히 드러나서이다.

다만 오프닝 시퀀스에서 창문으로 몽타주를 구성한 건 다소 의아하다. 창문 너머에서의 시선도 아니고 보이는 그대로의 창문이라니. 아마도 창문 너머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는 식의 표현일 수도 있고(이 경우에는 플레처/션 케이지 사건에 대한 비유일 테고). 단순하게 도시와 외로움은 아닐 듯하지만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버드맨」도 그렇고 「위플래쉬」도 그렇고 예술가의 일면을 그린 영화들이 모두 강박과 관련한 묘사를 하는 건 재밌는 부분이다. 심지어 둘 다 자신만의 존재를 찾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도 그렇고. 다른 소재와 다른 표현법이지만 이런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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