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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Sep 12. 2016

밀정

차가우려다가 뜨거워진, 약간은 미지근한.

개인적으로 말하면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딱 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서로의 것을 (얼추 보임에도) 숨긴 채 ‘수싸움’을 벌이는 것을 언제나 좋아했던 편이기에 공유·송강호가 그런 연기를 펼친다는 것만으로도 ‘필람’을 결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밀정>은 다행히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첩보물을 오마주 하되 지나치게 전개의 충격적인 반전이나 긴장감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오랜 고민이 느껴지는, 차분한 영화의 감성과 구성의 대비는 <밀정>이 단순히 상업적인 지점만 지향하진 않았다고 증명하는 듯하다.     


 먼저 <밀정>이 무척 흥미로운 건 최근 꾸준히 개봉해왔던 ‘일제강점기’ 영화들과 비교해봤을 때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덕혜옹주> <암살>은 물론이고 심지어 김지운 감독 자신의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도 비교해봐도 재밌는 장면들이 많다.    

  

 또한 김지운 감독의 ‘공간’ 활용 역시 명장면을 만들어낼 정도로 탁월하다. 좁은 차 안에서 공유-송강호-김동영의 묘한 긴장감을 잡아내는 장면은 ‘악마를 보았다’의 택시 장면을 연상시키게 하고,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식사를 하러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미세한 트래킹과 겹쳐지면서 ‘콜드 느와르’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첩보물을 만들고 싶었기에 제작된 <밀정>은 그만큼 김지운 감독이 동경했던 고전영화에 대한 느낌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디졸브의 사용과 풀 쇼트로 그려지는 전경은 클로즈업과 짧은 쇼트에 의지하는 현대 영화들보다 꽉 찬 느낌을 주고 패를 감춘 인물들의 대화는 당시 대화체의 운율과 뒤섞여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밀정>은 무척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다름 아닌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적인 표현보다는 속을 삭히고 감춰야 하는 이번 작품에서 공유는 돋보이지는 않지만 영화의 가장 바탕이 될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공유의 김우진이 아니었다면, 김우진이란 역이 흔들렸다면 <밀정>은 아마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유는 영웅보다는 그 당시 젊은 청년으로서의 독립투사로 영화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물론 거론할 필요도 없는 송강호 역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매번 그의 연기에 만족하는 관객으로서 이제는 그의 연기에 ‘경악’할 부분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언제나 그의 연기가 최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와 호각을 이루는 엄태구는 이 작품의 최고 수혜자이자 선물이다. 송강호의 이정출과 정반대의 성향을 부각하면서 그가 영화에 부여하는 긴장감은 단연 최고다.      


 그럼에도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작품 중 어떤 지점에 자리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장르적으로 ‘콜드 느와르’를 지향한 탓에 (작품성을 떠나) 정서적인 여운이 적기도 하고 인물이 많아 다소 생략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들며 ‘느와르’도 ‘역사물’도 아닌 것 같은 애매함도 있다.     


 그러나 <밀정>은 그동안 감정적일 수밖에 없던 시대를 보다 차가우면서도 영화적으로 풀어냈다. 거기에 긴장감 넘치는 시퀀스, 순간적으로 감성을 끌어올리는 쇼트,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이 끊기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수작임은 분명한 이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을 마치고 좀 더 채워지는 순간이 오면 어떨까 기대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가 끝까지 갔다면, 아쉬움이 남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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