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빛나는 영감, 순간 사라지는 여운
아무리 좀비영화가 ‘붐’을 넘어 포화상태라지만 <아이 엠 어 히어로>는 독특한 지점이 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점, 그리고 그 원작을 일본에서 영화화했다는 점(일본 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들이 그동안 어땠는지 떠올려보라), 그리고 제목부터 의도적으로 리처드 매드슨의 ‘아이 엠 레전드(나는 전설이다)’를 연상케 하는 점.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한다면 무엇을 기대하든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 일본 영화 특유의 관조적인 시선과 찌질한 (중2적인) 인물들, 그리고 그간의 좀비물을 기묘하게 뒤튼 내용 등 몇몇 부분들을 제외하면 꽤 긴장감 넘치도록 구성돼있다.
무엇보다 명장면이라면 초반부에 처음으로 좀비가 사회를 뒤덮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시퀀스다. 그야말로 ‘종말’이 사회에 침투하는 과정을 서서히 아수라장이 돼가는 도심지로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주인공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는 현장감이 뚜렷하게 담겨있어 영화의 긴장감을 단번에 끌어올린다.
또한 좀비물과는 별개의 일상적인 공포를 부여하는데, 좀비들이 과거의 기억에 갇혀있다는 설정 때문. (필자를 포함한) 한국 관객들이야 일본어가 외국어지만 일본 관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상적인 언어를 반복하는 괴물이라니. ‘안녕하세요’ ‘여보세요’ 등을 반복하는 한국형 좀비를 생각하면 몹시 등골이 서늘한 ‘농담’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아크로바틱적인 움직임이 강조된 좀비들이나 각자 독특한 좀비들의 출연은 ‘물량공세’보다 더 짜릿한 좀비물의 스릴을 부여하기도 한다. 중간중간 재치 넘치는 유머도 블랙코미디로 잘 작용하는 편이고.
하지만 재밌는 영화 이상의 완성도는 아니라고 본다. 인물이 낭비되는 경향이 강하고 그로 인해 이야기의 결말 자체가 사실상 공허한 느낌만 준다. 영화의 특성을 알기에 이런 전개가 가능하지 납득할 순 있어도 순전히 그 ‘특성’에만 매달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제목이나 소재 등에서 좀비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 듯한 예감을 주었지만 아쉽게 ‘아이 엠 어 히어로’는 그 지평선을 넘기는 못했다. 분명 재밌고 흥미진진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영화다. 좀비나 고어한 액션물을 좋아한다면 딱 취향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