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처럼 남아버린 기억들
워낙 다작을 하는 우디 앨런 감독이라 아직도 그의 작품 중 아주 극히 일부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은 말이 많고 재기 발랄한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그것이 취향이 딱 맞진 않았다. 오히려 키득키득 웃고 나면 기억에 크게 남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카페 소사이어티>는 적어도 관람한 작품 중에서 가장 코믹하면서도 역설적인 그의 철학이 잘 담겨있다. 96분이란 시간 중 낭비되는 부분 하나 없이 모든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제(와 결말)에 응집돼 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뉴욕과 할리우드를 오가는 내용 때문에 두 도시를 모두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무척 부드러운 트래킹 쇼트의 반복, 그 속에서 살며시 인물들을 빛내주는 조명 등이 장면마다 아름다움을 더한다. 특히 주관적인 시선이 들어간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다른 것보다 이 작품에선 그의 유머가 냉소적인 부분보다 상황에 맞춰서 유발하는 부분이 많아서 기존 그의 유머보다 코드가 잘 맞는 편이다. (물론 관객이 동일하진 않겠지만) <이레셔널 맨>보다 극장가에 웃음이 많이 터졌던 것을 보면 한국 정서에 더 잘 맞는 것일 수도 있다. 바비의 형인 벤(코리 스톨)은 거의 등장 때마다 재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또 영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영화에서 거론되는 이름들만 들어도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미국 문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더 많은 부분들을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코미디 속에서도 우디 앨런의 염세적인 철학이 잘 담겨있다. 예고편에서도 등장하는 “삶은 가학적인 작가가 쓴 코미디”라는 말은 물론이고 어떤 인물의 종교적인 변화 역시 단순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의 결말과 엮어서 생각해볼 만하다.
다른 건 몰라도 <카페 소사이어티>는 결말이 가장 완벽한 영화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다. 분명 감성적이지만 그 저변에는 영화 시작부터 쌓아온 역설이 있기에 엔딩의 분위기로 작품이 함몰되지 않는다. 이 마지막 1분 정도의 시간이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경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