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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시간

강동원으로도 깨지 못한 괴리감의 벽

by sothaul

이처럼 시적인 제목에 강동원이라니. 노림수가 너무 뻔해 보여서일까. 기대작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잔잔하게' 상영 중인 <가려진 시간>은 참신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인가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가려진 시간>은 꽤 정확하게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엄태화 감독이 상상한 그림에 맞아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어도 최근 상영된 한국영화에서도 단연 아름다운 미장센을 보여주고 시나리오가 가진 동화적인 이미지도 충분히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가려진 시간>이 동화적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소 의아한 지점들이 있다. 애초 엄태화 감독은 이 이야기를 아예 다른 세계로 만들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에서 전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현실적인 부분까지 극대화시켜 이질적인 느김을 주는 팀 버튼과는 다르다. <가려진 시간>의 세계는 재개발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아이들이 학원을 운운하는 대한민국 사회를 기반으로 한다.


거기에 성민(강동원/이효제)은 지극히 정상적인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성민은 이 현실적인 세계에서 인간이 가지는 현실적인 감정과 15년 동안 홀로 애정을 품어왔을 한 소년의 지고지순한 마음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역이다. 그렇기에 사실 강동원을 제하면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적격의 캐스팅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강동원마저도 한 청년의 모습으로 완벽한 순수를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다. 만일 강동원이 체구가 작았다면(마른 것 말고 작았다면) 오히려 더 적당했을지 모른다. 그러다 190cm가량의 큰 청년이 소녀에게 "나랑 도망가자"라고 말하는 순간, 판타지는 현실적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편함을 안긴다.


황진미 평론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이 작품을 향해 "강동원이 아니었으면 아동성애의 느낌만 났겠구나"라는 언급은 적당해 보인다. 스스로 소년이었어야 하는 역할을 위해 순수한 지점을 접근한 강동원이었음에도 이런 적극적인 표현은 영화에서 잘라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많은 이들이 기대했을 '강동원-신은수' 콤비의 만남이 너무 늦다. 영화를 시작하고 이(효제)성민과 오수린이 친해지는 과정을 오래 보여주면서 이미 두 아역배우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대강의 설명 후 제시되는 강(동원)성민과 오수린의 호흡은 감탄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다. 두 사람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그 감정을 공유한다기보다 이미 박제된 '애정'을 토대로 감정을 퍼줄 뿐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이맘때쯤 개봉했던 <검은 사제들>과 <가려진 시간>은 강동원이란 배우에게 큰 숙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건 바로 탄탄하지 못한 시나리오를 고른다는 점이다. 두 작품 모두 중간단계에 필요한 갈등은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말과 감정적으로 소비되는 것들이다. 장르 지향점이 다르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스릴러/미스터리였어야 하는 작품들이 대화와 트라우마에만 의존한 전개 방식은 치명적이다.


이런 점들을 제외하면 <가려진 시간>은 분명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배우들의 연기,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 시간이란 초감각적인 것의 표현을 위해 감각을 대표하는 눈과 귀를 포착해나가는 카메라 등 세밀하게 계산된 연출이 보인다. 2016년 <트릭>처럼 함정이었던 데뷔작이 있었다면 <비밀은 없다> <스플릿> <가려진 시간>처럼 탄탄한 (상업) 데뷔작들이 있었음에 안도해도 좋을 것이다.


+ 아마 이 영화의 최대 난조라면 오프닝부터 대충 짐작되는 후반부의 흐름이 아닐까. 하고 싶은 말을 위해 이 구성을 채택했다지만 '시간'이란 소재만큼 전개를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 다소 패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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