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속에서도 살아남은 선한 자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영화에 붙을 가장 좋은 수식어 중 하나이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단순히 이것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작품이다. 단순히 예술적으로 혹은 정치적 수단으로 비칠 수 있는 '수상'이란 영예 뒤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가장 깔끔하고도 묵직한 영화의 본질에 닿아있다.
사실 영화의 규모가 작을수록 그것의 작품성이 메시지의 무게로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메시지를 앞세워 관객에게 '폭력'에 가까운 강압적 태도를 보이는 영화들도 종종 보이곤 한다. 그러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분명 명백한 메시지에도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영화의 '정석'을 지킨다.
영국이란 배경의 특수성이 묻어나는 장면도 있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대체로 한국에서도 통용될 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실적인 접근을 배제한 채 시스템이 시대의 발전을 급급하게 따라가는 모순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낙오자'들은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소재이기에 스토리나 장면 묘사를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다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스타일이랄 것도 없을 만큼 고정된 프레임으로 차근차근 쇼트들을 이어나간다. 그 속에는 그야말로 연기라고 생각지도 못할 배우들의 연기가 녹아들어 있고, 이런 요소들로 현란하지 않으면서도 집중할 수밖에 없는 몰입도를 선사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인물들의 슬픔이나 절망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언급했듯 그런 장면들 또한 그저 주시하는 쪽에 가깝다. 어쩌면 이 영화는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가 본인의 교착된 상황에서도 타인을 돕듯, 사람 내면에 약자를 향한 연민이 내재돼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일 그렇다면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에너지는 꾸준히 이런 문제를 제기해온 켄 로치 감독과 폴 래버티 각본가의 열정일 수도 있고, 정말 능숙하다 못해 의심의 여지도 주지 않는 연기를 펼친 배우들의 능력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시스템의 모순과 그럼에도 생존한 선한 이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작품임은 분명하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화 속에서 자신의 범주를 이탈해서 저항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소박하게까지 보이는 그의 '저항'은 극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적어도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선한 이들을 끌어당긴다. 켄 로치 감독은 어쩌면 그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