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치졸한 이분법은 없는 피카레스크

by soth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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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수라>가 국내에서 받은 평가는 굉장히 박했다. 다섯 배우들의 이름값과 <내부자들>을 이을 '사회 고발극'이란 느낌은 <아수라>가 가진 힘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물론 <아수라>를 재밌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 단순히 재밌냐 아느냐의 관점을 넘어 보다 정통으로 '악'을 그렸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수라>는 한국의 가상도시 안남을 배경으로 하지만, 훨씬 더 판타지적인 부분들을 강조한다. 안남의 뒷골목은 동남아를 연상케 하고, 흔히 말하는 '달동네' 역시 한국의 것을 닮지 않았다. 푸른 대문이나 기와집, 컨테이너 박스 등으로 연상되는 한국의 빈민촌과 달리 <아수라>의 빈민촌은 미로처럼 꼬인 구조나 녹슨 철강으로 대변된다. 그 과정에서 안남과 인물들은 분명 한국이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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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의 묘사에서도 그렇다. 각각의 인물들은 가족이란 배경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려진다. 그나마 정감이 가야 하는 한도경(정우성)의 아내는 묘사가 되지만, 그는 도리어 한도경을 악의 소굴로 몰아넣은 요인 중 하나이다. 딱 한 번 외국인 아이를 제외하면 아이들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아수라>는 그 제목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수라도 안남을 그리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소거해나간다.


때문에 <아수라>는 결코 사회 고발극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최고의 이유는 바로 '성'의 거세이다. <내부자들>이 악역을 단번에 소개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 중 하나는 '난교파티'다. 간단하게 늙은이가 젊은이를 탐하는 단 한 장면만으로도 그들은 관객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냈다. 하지만 <아수라>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성적인 코드를 발견할 수 없다. 더 자극적으로 그렸어도 될 이 영화가 굳이 성적인 부분을 제한 건 폭력으로 상징되는 악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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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만이 등장하는 장르 피카레스크를 차용한 <아수라>는 주인공인 한도경, 그와 비슷하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을 문선모(주지훈)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갖는 과정을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극한에 달한 도경과 상황이 좋아지자 급격히 태도가 바뀐 선모를 보여줄 뿐이다. 이 방법으로 <아수라>는 폭력에 쩐 군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장점과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정 붙일 수 없다는 단점을 함께 가져온다.


표면적으로 <아수라>는 매끈한 상업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까 보면 (제작진이 무엇을 지향했는지와는 별개로) 독립영화처럼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수라>의 패착은 그 지점에서 있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작품의 특성과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캐스팅과 시기. 그 두 가지의 불화는 <아수라>를 직시하기엔 큰 벽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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