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예상대로 그냥 그 상태
연말에 어울리는 영화다. <마스터>는 딱 그런 영화다. 노골적으로 폭력적이거나 성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선한 이들만 나오는 착한 영화도 아니다. 블록버스터에서 빛나는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도 좋고, 액션 장면도 꽤 통쾌하다. 하지만 좋은 영화냐고? 143분의 이 영화를 추천하자면 차라리 이와 비슷하지만 더 짧은 영화, 혹은 더 길더라도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는 게 도리일 듯싶다.
기대를 많이 했지만 예고편 공개 때부터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본편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마스터>는 지나치게 친절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어려운 대부분의 것은 전문용어이지, 결코 인물들의 관계나 전개 양상이 아니다. 인물들끼리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계속하지만, 그 신경전이 전개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기꾼의 브레인이 경찰에게 협조를 강요받는다. <마스터>보다 이 한 줄 스토리가 차라리 더 많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마스터>의 균형감이 무너진 최고의 이유는 어떤 인물에게 중심을 둘지 헤매기 때문이다. 김재명(강동원)이 실루엣으로 등장하며 이어지는 회의 장면, 그리고 진 회장(이병헌)을 포착해나가는 장면은 김재명과 그의 팀원들의 고군분투가 영화의 중심이 될 것처럼 암시한다. 그러나 박장군(김우빈)이 등장하자 어느새 영화는 박장군의 줄타기가 중심에 와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진 회장이 권력을 잡고 흔드는 장면도 껴넣는다. 어떻게 진 회장이 그 권력에 와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가 왜 신뢰받는 사기꾼인지 보여야 하는데 그 아우라도 결코 설득력을 주지 못한다.
멀티캐스팅 영화가 이런 방식이긴 하지만 <마스터>의 큰 착각은 이들이 하나의 목표로 움직이는 것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양립되는 것도 아니란 사실이다. <마스터>를 보기 전에도 연상될 수밖에 없는 <내부자들>은 이강희-안상구(및 권력 세력)와 우장훈 검사의 양립으로 시작된다. 이후 안상구(이병헌)가 이강희(백윤식)에게 배신당하며 큰 판이 휘둘리게 된다. 하지만 <마스터>에서 박장군은 단순히 집행유예에 흔들릴 뿐만 아니라 김재명이 지나치게 확고한 '정의'를 품고 있어 일말의 밀당도 없다. 여기서 이 작품을 채워야 할 세 캐릭터의 입체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타까운 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 즉 김재명-박장군-진회장이 만나는 순간부터는 흥미롭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숭고해 보이는 김재명은 진 회장 앞에서 그 자체가 위장이 되고 반대로 진 회장은 그런 비현실적인 김재명과 대비돼 처세술 좋은 악당의 면모를 드러낸다. 박장군은 그런 둘 사이에서 끝끝내 속을 알 수 없는 첩자다운 존재감을 남긴다. 각각의 인물들은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밋밋한데 반면 함께 모인 장면에서의 시너지는 인상적이다. <마스터>는 그 맛을 마지막에야 비로소 남길뿐이다.
그동안 블록버스터를 보고 '잡탕찌개'라고 한 적도 있지만, <마스터>는 블록버스터에서도 정말 드문 밍밍한 작품이다. 단독 주연급의 세 배우가 함께 출연하지만 그보다 조연이 인상적이고, 말레이시아까지 갔지만 그보다 이병헌의 영어 연기가 기억에 남는 이 영화. 빠른 흥행 속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할지라도, 영화 자체의 생명력은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