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탈을 쓴 하류인생의 페이소스
아무래도 주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주토피아>와 <마이펫의 이중생활>처럼 동물이 나온 애니메이션과 음악영화 또한 많았으니까. 하지만 <씽>은 이들과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진 작품임은 확실하다.
국내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유행했던 만큼 <씽>은 그런 프로그램을 연상케 한다. 모든 인물들은 각자 궁지에 몰려있거나 자신의 꿈에 절실하다. 이 영화는 그런 인물들을 조명하는 대신, 그렇다고 그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지 않는다. 그들에겐 공통된 감정, 절실함이 존재하지만 서로가 서로을 완전히 알거나 이해하진 않는다. 그런 담백함이 <씽>에서 큰 장점으로 부각된다.
요컨대 <씽>의 인물들은 동물이란 것만 벗어나면 '루저' 일색이다. 고스란히 실사화할 수 있을 정도로 판에 박혀있다. 그러나 이것을 동물의 외형, 음악적 장르, 극 중 동물세계와 현실의 사회의 시선의 접합으로 교묘하게 포장시켜 새로운 재미를 안겨준다.
<주토피아>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사회적 편견을 담고 있고, <마이펫의 이중생활>은 반려동물과 인간 사이의 감정선을 토대로 이야기를 펼쳤다면 <씽>은 꿈을 향해 나가는 성장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그래서 <씽>은 세밀하게 짜여진 세계관과 거리가 멀다. 인물들이 종족 때문에 관계가 변화하는 전개도 사실상 없다. 대신 그 인물의 개인 감정에는 더욱 깊이 들어가고, 그 결과 정말 슬픈 'Call Me Maybe'를 만날 수 있다.
아쉬운건 애니메이션에 뮤지컬답게 <씽>은 촘촘한 해결과정보다는 허술하지만 유쾌한 방식으로 위기를 타개해 나간다. 버스터 문(매튜 맥커너히)가 극장의 전기를 단 하나의 콘센트로 해결하는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무척 재치 있는 장면들이지만 영화가 끝나고 남기는 현실적인 여운과는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다.
또한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콘서트 장면도 호불호가 존재할 수 있다. 인물들의 심리가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이 시간이 짧지만은 않기에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에도 다소 길게 느껴지곤 했다.
<씽>은 짠한 감정을 남긴다. 유쾌한 팝송들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고, 그걸 그리는 일루미네이션의 손길도 무척 진지하다고 느껴진다. 올해 <도리를 찾아서>만큼 다시 한 번 쉽게 잊히지 않는 애니메이션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