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만 자극하고 가버린 이여
일반적으로 SF영화라 하면 대번에 떠올리는 건 장대한 스케일일 것이다. 특히 크리스 프랫과 제니퍼 로렌스처럼 A급 배우들을 내세운 영화라면 더욱. 하지만 SF영화는 그 스케일을 떠올릴 상상력만큼이나 현실의 문제를 새롭게 통찰하는 시선 또한 중요한 장르이다. <패신저스>는 상상력에서 성공적이었더라도, 통찰에서 엄청난 패착을 보여준다.
북미에서 받은 엄청난 혹평에 비하면 <패신저스>는 꽤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제2의 보금자리 행성으로 떠난 우주선에서 갑자기 동면에서 깬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적어도 '눈호강'만큼은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부랑자를 연상시키는 초췌한 모습부터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보여주는 크리스 프랫이나 시종일관 지적이면서 아름다운 매력을 선사하는 제니퍼 로렌스, 개별적으로도 커플로도 최상의 연기 호흡으로 영화를 채우기 때문이다.
또한 <패신저스> 속 우주선 '아발론'의 공간은 완전히 새로운 감각은 아니지만 SF 블록버스터다운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역시 청소로봇이라 할 수 있겠는데, 짐(크리스 프랫)의 등장과 함께 줄지어 나가는 모습이나 청소밖에 모르는 모습은 쥐, <월-E>의 모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패신저스>가 여타 SF영화에 비해 좋다고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여기서 끝이다. 어쩌면 SF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상상력과 현실을 향한 통찰, 시선은 <패신저스>에서 딱 한 시간 즈음부터 사라져 버린다. 일각에서 로맨스 영화라고 일컫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패신저스>는 각각의 부분에서 극대화를 시키자면 공포, 재앙, 철학 등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본 설정을 가지고 있다. 저 멀리 집으로 향하는 우주선에서 깨어났는데, 아직도 90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공포에 가까운 상황이다. 거기에 단 두 사람만이 남았고 심지어 남자와 여자라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풍부해진다.
재밌는 건 <패신저스> 자체에도 여러 가지 메타포가 담겨있다는 점이다. 짐이 조식을 고를 때 '골드 클래스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제한은 받는 것, 짐은 전기공학 엔지니어인데 오로라(제니퍼 로렌스)는 작가라는 것은 적어도 <패신저스>가 사회 계급에 대한 담론이나 사회 속 남녀 젠더 이슈를 다룰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는 암시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패신저스>는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그 모든 문제를 우주선에서 겪는 '재앙'이란 위기로 뭉뚱그려버린다. 이런 계급과 젠더에 관한 암시들은 그저 영화를 보편적으로 만들기 위한, 볼거리와 소소한 에피소드를 위한 소품이었다는 걸 스스로 밝혀버린다. 결국 많은 가능성을 가진 듯 보였던 <패신저스>는 보는 이들에게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를 선사하고 만다. 평론가들이 느꼈던, 그것도 SF 계열이 국내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북미에서 평가가 절대적으로 좋지 않은 건 이런 배신감도 일조했을 것이다.
만일 <패신저스>가 영화 내내 풍겼던 다른 장르적 방향성을 선사했다면 아마 블록버스터 예산을 들인 예술 영화처럼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향해 달려가 아쉬운 결말만 남기고 만다. 영화로서 긴 생명력을 갖으려면 많은 이들에게 회자돼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그 내용이 '2차 창작'이 아닌 '분석'이어야 한다고 본다면, <패신저스>는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영화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