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뭘 보고 싶은지 알고 시작했어야
SF 장르도 좋아하고 원작 게임 시리즈도 일부 해본 입장에서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혹평처럼 <어쌔신 크리드>는 장대한 이야기를 어색하고도 공허하게 풀어내고 말았다.
게임을 영화화하고 혹평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스토리가 원작과 너무 다르거나 아니면 원작 팬만 고려해서 이해가 안 간다거나 게임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거나 기타 등등. <어쌔신 크리드>는 적어도 그런 이유를 서너 가지는 들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함만 가득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어쌔신 크리드>는 새롭다. 주어진 미션에 맞춰 플레이어가 하는 대로, 혹은 인게임 시네마틱 영상으로 진행되는 게임에서 느끼지 못할 주인공의 갈등을 현실적으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단지 유전자 때문에 이유도 알 수 없이 끌려와 선택을 종용당하는 칼럼 린치의 심리를 잘 짚어낸다.
문제는 그런 갈등을 만들어놓고도 정작 영화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모든 인물들은 마치 정해진 스크립트대로 움직이는 게임 캐릭터처럼 할 것만 하고, 심지어 감정적인 고조도 크지 않다. 칼럼 린치가 선택을 하는 과정도 설득력이 없고 그를 설득해나가는 소피아 라이킨(마리옹 꼬띠아르)의 방식도 지나치게 한결같아 도리어 지루함만 준다.
그런 탓에 <어쌔신 크리드>는 사이코드라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칼럼 린치를 경계하는 또 다른 암살자의 후손들도 긴장감을 조성한다기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대사들을 늘어놓고 앨런 라이킨(제레미 아이언스)과 소피아의 관계도 고저만 있을 뿐, 그 사이에 흐름이 없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건 <어쌔신 크리드>가 어떤 관객들을 겨냥했는지조차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원작 팬들을 노린 여러 요소도 있지만 정작 원작 팬들이 선호하는 액션이나 파쿠르 장면은 비중이 적고 반대로 일반 영화 관객들을 노렸다기엔 지나치게 설명이 적고 관념적인 부분(자유의지, 유전자 등)을 부각한 시나리오를 택했다.
원작 팬이지만 과하다 싶은 건 독수리의 남발. 시대나 장소를 오가는 순간의 익스트림 롱쇼트에서 굳이 독수리를 매번 등장시킨 건 오용이 아닌가 싶다.
좋게 말하면 <어쌔신 크리드>는 블록버스터 속에서 새로운 입지를 관철하려고 했다. 애초 원작에서도 어쌔인(암살자)와 템플러(기사단)가 종교 문제에 깊게 관여했듯 여러 차례 종교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것, 그리고 원작의 애니머스가 누워서 유전자 코드를 읽는 식이었던 것을 영화에 맞춰 역동적인 장비로 변경한 것(하지만 이것도 이렇게 영사되는 방식일 필요가 있나 싶다) 등은 안전한 방향보다 게임 팬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 영화가 굳이 <어쌔신 크리드>였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원작의 퍼블리셔인 유비소프트가 참여했다지만 오히려 원작의 팬 메이드 필름, 2차 창작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원작 팬과 관객, 둘 중 하나도 잡지 못할 것이었다면 왜 이 작품이 나와야 했는지 그저 의구심만 들뿐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유비소프트는 2부터 시작'이란 농담이 있는데, 이 시리즈는 2편이 나올 수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