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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Jan 17. 2017

모아나

태도의 진일보, 스토리의 제자리걸음

역시 디즈니는 뭘 해도 '옳은' 기업이다. <모아나> 역시 놀라울 정도로 재치 있고, 또 재기 발랄한 애니메이션이다. 다만 스토리 전개의 제자리걸음은 그저 아쉬울 뿐이다.


이 한겨울에 둘 다 따듯한 느낌을 주는 <너의 이름은.>과 <모아나>이 흥행 중인 걸 보면 관객들이 (실질적인 온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이 추운 겨울을 달랠 작품을 오래 기다려왔는지 알 듯싶다. 특히 <모아나>는 열대야 지방을 배경으로 삼아 시종일관 푸른 바다가 나오는 화면에서도 따스한 느낌을 전한다.


<모아나>는 전작들처럼 넘버에 배경이 되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공주와 개구리>가 재즈음악풍으로 넘버를 구성한 것처럼, <모아나>의 곡들에선 원주민들의 언어를 직접 삽입하고 악기 구성이 만드는 사운드도 색다르다. <모아나>의 스토리가 캐릭터를 둘러싼 환경과 굉장히 밀접하기에 이런 넘버들은 영화와 캐릭터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모아나>에서 가장 감탄할 부분은 그래픽 퀄리티와 영화가 가진 태도이다. 먼저 그래픽에선 픽사 스튜디오가 <굿 다이노>에서 보여줬던 롱쇼트 못지않은 묘사력을 보여준다. 바다를 배경으로 때때로 환상적인 장면들은 <라이프 오브 파이>를 떠올리게 만들고, 인물들 위주로 펼쳐지는 오밀조밀한 장면들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질감마저 닮았다. 


명장면이라면 'Shiny'에서 타마토아의 두 가지 모습. 해당 넘버 전반부의 반짝거리는 모습과 후반부의 형광빛으로 위장한 모습은 <공주와 개구리> 파실리에 박사의 'Friends on the Other Side'를 다른 버전으로 재창작한 느낌도 준다. 전반적으로 곡절이 많지 않은 <모아나>에서 이 장면은 무자비한 빌런의 성격을 유쾌한 멜로디로 풀어내 더욱 인상에 남는다.


사실 <모아나>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주인공 캐릭터의 그려내는 태도에 있다. 극 중에서도 여러 차례 "나는 공주가 아냐"라는 대사로 대변되듯 이 영화는 여타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보다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전작 <겨울왕국>(<빅 히어로> <주토피아>는 뮤지컬은 아니다)에서도 엘사가 스스로 인간과 다른 모습을 인정하는 'Let it go'가 있었듯 이번 작품에서도 모아나가 자아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넘버가 있다. 


이 부분은 각 두 작품의 제목과 연관 지어봐도 흥미롭다. 주인공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겨울왕국>(원제 Frozen)과 달리 <모아나>는 주인공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넘버 제목 또한 'I am Moana'이다. 각각 태생적으로 타고난 외적인 '능력', 내적인 '방향성'으로 고민하는 엘사와 모아나, 역시 월트 디즈니에서 제작하는 스타워즈의 여성 주인공들을 죽 돌아보면 앞으로도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대략적인 지향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모아나>는 스토리에서 실망케 한다. <겨울왕국> 역시 뻔한 스토리를 그저 예쁜 화면과 연출로 덮으려 했듯, <모아나>는 심지어 중후반 이후 몽타주와 인물들의 상투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위기 극복을 보여줄 뿐이다. 예상치 못한 캐릭터의 합류, 바다에서 펼쳐지는 잘 짜인 장면, 여유가 느껴지는 메타적인 대사 등 전반부의 신선함이 컸기에 후반부의 구태의연함은 더욱 아쉬움을 준다.


극적이었어야 할 부분이 다소 힘이 빠진다는 것만 제외하면 <모아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결코 누가 될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으로 첫 데뷔한 아울리이 크러발리오의 음색과 드웨인 존슨의 연기부터 '눈이 즐겁다'라는 뻔한 수식어밖에 표현할 수 없는 비주얼, 곱씹게 되는 넘버 등 <모아나>만의 매력 역시 충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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