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부분들이 전체가 될 순 없다
이러나저러나 자비에 돌란 감독은 영화계서 핫한 인물 중 하나다. 그가 주조하는 작품들은 이성으로 통제된 예술도, 그렇다고 모두의 입맛에 맞춰진 상품도 아니다. 때때로 감정을 마음대로 드러내고 화사한 영상으로 포장하는 그의 작품들은 두 계열의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단지 세상의 끝>도 그런 그의 전작들과 비슷한 길을 걷는다.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그에게 감독상을 준 것도, 그 수상에 야유했던 기자들도 그런 점 때문일 것이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따라붙는 그의 평가에 감독 스스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동명의 희곡을 영화화한 <단지 세상의 끝>은 자비에 돌란 감독의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화사하고 예쁜 영상, 그에 못지않게 탁월한 선곡 감각, 그리고 인물들의 충돌을 통해서 이끌어내는 연민까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배우들이 불어로 펼치는 신경전을 보면 어느 정도 황홀함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단지 세상의 끝>은 딱 그 정도로 그친다. 주인공 루이(가스파르 울리엘)가 한 사람 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들은 영화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장, 막의 구조를 고스란히 영화에 녹였다. 화면이 아무리 화려해도 무대 위에서 펼쳐졌을 앙상블이 연상되곤 한다. 영화의 특성을 극대화해 인물들의 심리를 최대한 포착하고자 클로즈업으로 이들을 주시하지만, 계속되는 대화에선 이마저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또한 영화 중간 특유의 몽타주와 루이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이입하기 위한 사운드 장치들이 여러 번 반복된다. 이것들이 제 역할을 한다기보다 반복적으로 과하게 등장하면서 역시 자연스러운 감정을 빚기보다 역으로 구성을 바라보게 한다.
자비에 돌란 감독이 꾸준히 제시해온 가족, 혈연이란 관계에 대해선 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잡히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만이 있는 것이 아닌 그 애매모호한 시선들을 이전처럼 모자를 넘어 한 가족 단위로 표현해 좀 더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이 각 인물들에게 귀결된다기보다 오히려 루이라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아바타인 그에게만 마침표를 찍는다. 마지막 엔딩 장면의 상징도 <단지 세상의 끝>의 결론이 아니라 (실제 원작의 엔딩은 알지 못하지만) 원작 희곡에 어울릴 법한 표현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단지 세상의 끝>은 각 요소들이 무척 수준급임에도 한 편의 영화로서는 응집된 느낌을 주지 못한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반복되는 듯한 구성은 관객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준다. 그 정서조차 돌란 감독의 의도였다고 한들, 영화로서 가져야 할 전체적인 작품의 메커니즘이 부실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