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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Mar 01. 2017

눈길

잊지 말아야 할 소녀들의 이야기

때때로 영화를 보다 보면 은근히 평가를 하기 꺼려지는 작품들이 있다. 종교를 다루거나 역사적 사실을 그리는 작품들이 그런 분류 중 하나이다. 때문에 <눈길> 역시 약간의 부담감이 있었지만, 다행히 <눈길>은 영화적인 시선과 역사 속의 비극을 적절히 배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작품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가 가해자들을 지독한 인물로만 그리거나 역으로 피해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동정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눈길>은 다소 교훈적인 태도를 종종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이 소재를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종분(김향기)과 영애(김새론)의 성격을 대비하면서 비극 속의 소녀들이 나누는 교감에 더욱 집중한다.


거기에 현재의 종분(김영옥)과 옆집 소녀 은수(조수향)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가질 삶의 응어리가 한층 부각된다. 놀랍게도 <눈길>은 이 시점에서 코미디를 구사하기도 하는데, 이는 폭소를 불러내면서도 한편에서 그 삶 속 울분을 담아낸다. 또한 이런 과거-현재의 교차를 통해서 최근 역사를 다루는 영화들이 수행했던 '살풀이'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물론 이런 교차 방식은 단점으로도 다가온다. 전개가 다소 너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특히 과거 부분에서 잔가지들이 많기 때문에 흐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치닫았을 때 과거-현재를 봉합하는 메시지는 진한 여운을 준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이 영화 속 공간감이다. <눈길>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작품이 아니다 보니 이 속의 공간들이 실제라는 감각을 주지는 않는다. 세트나 혹은 현재 있는 기념관을 활용한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두 시대를 아우르는 공간감이 통일감을 주기 때문에 <눈길>을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하는 역할도 하고, 시대를 재현한다는 감각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뚜렷하게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은 두 아역배우와 한 대배우의 연기력이다. 김새론과 김향기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소녀를 연기한다. 김새론의 영애는 부잣집 소녀로 흔히 말하는 엘리트이고, 덕분에 성격도 모난 구석이 있다. 그를 다독이는 김향기의 종분은 영애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동갑내기 친구로서 세심한 성격을 보여준다. 실제로도 동갑내기인 이 두 사람의 화합은 명백하게 비극적인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감성으로 풀어내는데 일조한다.


반면 김영옥은 역시 노배우의 저력을 제대로 과시한다. 때때로 과하게 작위적인 대사들도 완벽하게 인물로서 소화하며 장면에 윤기를 더하는 것은 물론, 삶의 과정에서 상대를 대할 때 미묘하게 달라지는 말투는 그 모든 삶을 견뎌온 무게를 짐작케 한다. 특히 결말부에서 보여주는 눈빛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물짓게 한다.


<눈길>을 명작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적어도 딱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을 충실하게 작품에 녹여내는 것 이상으로 성취해낸 것이 있다. 각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욕심이 부리지 않았지만 고민이 느껴지는 앵글, 거기에 절제할 줄 아는 미덕까지. 적어도 이 시대에는 <눈길>의 이 장점들만 가지고도 '필람'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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