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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Mar 13. 2017

콩:스컬 아일랜드

장르에 장르를 끼얹는다면

보통 국내 메인포스터를 올리지만 이 포스터는 작년에 봤던 포스터 중에서도 베스트였다.

만일 자신이 장르물을 좋아한다면, <콩:스컬 아일랜드>를 주변의 평과 상관없이 눈 딱 감고 한 번 보는 걸 추천한다. 계획된 B급의 향기가 가득한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라기엔 찝찝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젠체하지 않는 기묘함을 주기 때문이다.


괴수물답게 콩을 비롯한 괴수물들이 나올 때 가장 파격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그 장면들이 합을 잘 짠 액션 장면이 아님에도 관객들을 감탄하게 한다. 오로지 콩(테리 노터리)이란 괴물이 주는 어마무시한 외형, 힘, 그리고 카리스마 때문이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콩:스컬 아일랜드>는 괴수물에 히어로물을 끼얹은 느낌이다. 최신작 피터 잭슨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킹콩> 시리즈에서도 콩이 단순한 괴물을 아니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더 과감하게 콩에게 괴수의 이미지를 제거하고, 굳이 말하자면 '다크 히어로'의 아우라를 씌운다. 언뜻 듣기에 허무맹랑한 설정 같으나 영상으로 접하는 콩의 모습과 이 설정이 결합되면서 괴수물 이상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베트남전 이후 상황을 영화에 대입해 포스터에서도 암시됐듯 정글과 그 안에서 피폐해지는 군인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그려낸다. 만일 이것이 영화에서 예술적인 요소를 주고 싶은 야심으로 느껴졌다면 다분히 거부감이 들었겠지만, 스컬 아일랜드라는 공간과 괴수물이란 장르에 걸맞게 수용돼 오히려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신선함으로 승부를 한다기보다 장르의 법칙을 비틀거나 역전하는 식의 발상들이 돋보인다.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것도 콩이란 괴수에 맞서는 패카드의 광기이다. 다작배우이자 스스로도 서브컬처의 신봉자인 사무엘 L. 잭슨이 보여주는 연기는 그 자체로도, 장르물을 섭렵한 사람의 팬심으로도 충분히 작품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는 언제나 옳다.


물론 악수가 없는 건 아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량에 비해 턱없이 인물들이 많이 나오며, 그래서 무언가 있는 듯 암시되다가도 실상 별 것 아닌 경우가 많다. 우습게도 주인공처럼 그려지는 콘라드(톰 히들스턴)의 사연이나 존재감이 패카드에 비해 못한 편이다. 


대부분의 장르물이 그렇지만 <콩:스컬 아일랜드>도 보는 이의 호불호에 따라 재미에 충실한 수작이 될 수도, 아니면 속 빈 강정 같은 범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래 접할 수 없었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만나고 싶다면, 꼭 한 번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보고 나면 잘 생겨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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