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 불어넣는 밝은 에너지
직장생활 짬밥이 얼마인데 아직도 나의 직장생활은 밀려드는 업무에 쫓기기 일쑤다. 여러 슬기로운 직장생활 관련 팁들과 정보에도 불구하고 내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꿈꿔왔던 주체적이고 정열적인 직장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몇 해 전 직장에서 대외적으로 의미 있는 큰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월, 나는 용감하게도 몇 달 전 대책 없이 예매한 공연을 보기 위해 행사 개최 바로 전 주에 과감히 조퇴를 사용했다.
준비하던 행사 날짜가 다가오자 어디선가 불쑥불쑥 사소하고 자잘한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바쁜 것도 문제였지만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세 달 전 예매한 공연인데도 이쯤 되니 자연스레 공연관람을 취소해야 하나 노심초사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
하루를 통째로 쉬는 것도 아닌 조퇴 두 시간을 못쓸 만큼 내가 소심한 사람이었나!
아니야 다 같이 준비하는 행사인데 내가 빠졌다가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자리를 지켜야지!
일이 많은데 어쩌지 걱정을 싸 짊어지고 혼자 새가슴으로 작은 사안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던 시기였다. 마음의 갈등 속에서 결국 '뭐! 내가 일 열심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내면의 외침이 들렸다. 조퇴하겠다고 결재를 올렸음에도 다행히 나의 조퇴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연은 저녁 7시 30분, 직장에서 공연장까지 대략 2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공연 끝나고 집에 오면 밤 11시쯤 될 것 같았다. 직장생활, 육아, 장거리 출퇴근으로 여유 없는 일상을 사느라 극장도 공연장도 못 다니다 오래간만에 찾는 공연장이었다. 설렘으로 일찍 일정을 시작했던 덕에 저녁을 먹고도 공연 시작 시간이 한참 남아 백화점 구경도 하고, 커다란 카페에서 아이들 줄 묵직한 쿠키를 포장도 했다.
공연 좌석도 생각했던 것보다 앞쪽이라 무대가 잘 보였기에 두 시간 반 동안 라이브 노래에 흠뻑 젖어 공연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한 무대에 다 같이 집중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허우적거리는 일상 속 나를 들어 올려 따스하게 데워진 백사장 위에 펼쳐 뽀송뽀송 말려주는 기분을 만끽하며 공연시간 내내 나는 일상과 충분한 단절될 수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퇴근하여 바쁘게 집안을 정리하고, 대충 차려 저녁을 먹고, 지친 몸으로 샤워를 하고,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며 이내 잠을 청했을 것이다.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전혀 다른 일과는 밝은 에너지를 듬뿍 담고 있었다. 보통 은행업무를 보거나 집에 생긴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거나 차를 점검하는 등 일상 유지를 위한 또 다른 일을 위해 조퇴를 사용했다. 두 시간 조퇴를 이렇게 새로운 경험에 투자하여 길고 알차게 쓸 수 있다니! 이전 나의 조퇴 사용실태(!)를 반성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 당시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정신없이 업무에 매달리지만 돌아보면 크게 기억에 남지 않고 흘러가버린 시간들이 많다. 아마 두 시간 조퇴로 공연을 보고 오지 않았다면 열심히 준비했던 그 행사는 재작년인지 작년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지나간 과거 중 하나로 사소하게 치부되었을 것이다. 빠듯한 시간 중 일부러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약간의 일탈을 시도하면 염려와는 달리 지나 보면 오히려 그때의 다른 일 마저도 더 좋은 추억으로 떠오른다.
계산 없이 취소가 불가능하고 대책 없는 앞으로의 일정과 계획을 일 년에 한 두 개 콕콕 박아 놓는 것이 좋다. 쉽게 흘러가 버리는 일상에 색다른 일탈의 시간을 선사하고 나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당장 두세 달 뒤 나의 일상에는 어떤 보석 같은 일을 심어 놓을지 미리 살펴보고 점검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