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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n 29. 2021

말보단 글

실수가 무섭다면 지우고 수정할 수 있는 글을 써보세요.

 나는 글 쓰기를 좋아한다. 글에 재능이 있지도, 잘 쓰지도 못하지만 두서없이 머리를 뚫고 나올듯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글을 뱉어낼수록 내 머리는 점점 가벼워지고, 편두통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글로 생각을 정리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엔, 물론 지금도 수다쟁이지만, 시끄러운 수다쟁이였다. 글로 정리되기 전에 머리를 가득 채우던 생각을 바로 입으로 쏟아내면 서론이 길고 장황해 내가 말하고 나서도 상대가 이해를 했을지부터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말을 여러번 하며 다듬거나 글로 정리하고 나면 한결 깔끔한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글이 좋다.


 글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두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학창시절 계절을 주제로 산문이나 시를 쓰는 대회에서 상을 받은 긍정적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수다쟁이여서 들은 좋진 않은 말 때문이다. 첫 번째 계기로 나는 그림뿐 아니라 글 쓰는 것도 어느정도 잘 하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잘하는 포인트를 짚어보라면, 말하듯 쓰려고 해서 그런가? 내 글을 읽으면 누군가 머릿속에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스스로 받는다. 다른 사람도 느끼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두 번째는 최대한 단어를 다양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 첫 문단에서도 생각을 '뱉는다' 와 '쏟아낸다' 이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두 단어를 써서 지루하지 않게 하려 한다.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이긴 하지만 결국 이 글을 남기면 다른 이가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읽는 사람을 위한 글을 쓰기도 하는 것 같다.

두 번째 계기는 부정적인 경험이다. 두 경험이 있는데, 하나는 엄마에게 솔직하게 내 힘든 일을 털어놓았는데 시끄럽다는 말을 들은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자친구에게 받은 상처다. 싸우는 사이는 아이었다. 다만, 항상 장난만 치는 남자친구에게 진지하게 말을 했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울면서 서운한 점을 마구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때 남자친구는 한참 말이 없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말이 너무 많아.." 라고 했다. 그 당시엔 충격! 상처야!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서운하다는데 말이 많다니? 라는 의문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 다음에 생각해보니 정말 길긴 길었다. 서운해도 남이 알아들어야 소용 있는건데 너무 내 속풀이를 위한 소음을 내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튼 이런 경험들로 나는 말하기 전에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적극 활용중이다. 그렇다고 다이어리를 쓰거나 아기자기하게 매일을 기록하지는 않지만 글이 내 인생에, 그리고 내 평판을 만드는 데에 좋은 방법 중 하나라 생각한다. 짧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말로 하는 실수가 너무 크다. 그때 느낀 감정, 그때는 옳다고 여겼던 생각과 가치관을 순간 드러내버리는 것이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항상 생각이 변화하고, 가치관도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말을 하는 순간에 옳았던 생각과 감정으로 나는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 감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말은 아무리 고심 끝에 한 말이라도 나중에 주워담기 힘들다 생각한다. 지금은 보고싶은 친구도 너무 격하게 싸워서 다시는 보지 말자는 말로 영영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고, 그땐 맞다고 한 생각으로 아빠와 부녀지간에 못할 말을 쏟아내며 싸웠던 내가 지금은 아빠와 제일 친하지만 어색함이 감도는 사이가 된 것처럼.


 글은 말과 다르게 어디에 써도 지울 수 있고 잘하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은 내 표정, 눈빛, 말투, 행동 모든 걸 포함해서 전달되니 누군가의 기억에서 완전 삭제되기는 어렵다. 내 스스로 남에게 고정된 인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은 항상 아끼고 대신 글로 써보는 건 어떨까? 글이라는 것은 기록도 남기 때문에 내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앞으로도 달라질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지금 하는 말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구나라는 것까지 전달하기가 더 쉽다. 과거엔 뾰족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동그래지고 있다는 성장 과정도 보여주기 더 쉬운 것처럼 말이다. 말은 항상 그 순간에 저질러지고 그 사람이 그 말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기도 힘들다. 그래서 오해가 가장 많은 전달수단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고 글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혹시 나처럼 말실수를 하는 사람은 내 글을 읽고 공감된다면 같이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 내 경험담긴 권유의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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