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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Feb 18. 2024

[일일일글] 남 탓

왜 나는 갑작스럽게 남 탓을 할까?

 오늘 엄마가 주문한 흙당근 한 박스가 왔습니다. 제가 당근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요즘에 먹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필요한 걸 잘 챙겨주시는 편입니다.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당근 라페를 평소보다 많이 하려고 당근 5개를 열심히 채 썰고 있었습니다. 팔이 아팠지만, 많이 만들기로 한 건 나니까 이겨내자는 마음으로 묵묵히 갈았습니다. 아빠가 갑자기 제 뒤에 대고 유난히 큰 목소리를 더 높여 소리쳤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하냐며, 무슨 집에 불 지르려고 기름을 막 뿌리고 있는 다급하고 위급한 장면을 본 사람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런 반응에 거부감이 엄청난 편입니다. 별 일 아닌데 너무 큰 소리, 깜짝 놀란 말투요. 제가 노선을 아주 한참 이탈해 버린 기차도 아니고. 엄청나게 상식이나 예상에 어긋난,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말투였습니다. 아빠는 평소에도 그렇게 모든 행동에 입을 댔습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고, 큰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요. 그때마다 놀란 저는 내 의지로 하고 있던 일이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합니다. 본능적으로 남 탓을 하게 돼요. 오늘도 그랬습니다. 엄마가 당근을 너무 많이 시켜서 그래. 속으로는 내가 많이 만들려고 한 거라고 속삭였고요. 반복되고 강조된 소리는 제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제 이상형이 항상 차분하고,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강아지였다면 강형욱이 교정해 줬을 텐데. 아쉽게도 사람으로 태어나 교정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기억에 남는 일을 복기하고, 곱씹으며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게 된 걸지도 모릅니다. 


- 표지 일러스트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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