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없고요.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어봅니다.
내가 타인에게 깨달음을 줄 정도의 사람은 아니라는 빠른 판단으로 글의 방향성이 점점 제가 전날에 생각했던 내용을 기록하는 일기장으로 굳어가는 중입니다. 일기라고 하니 제가 일기를 쓸 때 버릇이 생각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나는'이라고 시작했어요. 다들 그렇죠? 요즘까지도 글을 쓸 때 나오는 버릇이 있습니다. 생각으로 하든, 타자로 하든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가 '요즘'입니다. 하긴, 요즘의 저는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지려고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해 쓰고 싶은데, 그게 항상 요즘의 저니까요. 저번에 대학교 동기들과 오랜만에 만난 후 돌아오면서 곱씹던 말이 있었어요. 너 참 많이 변했다는 말. 물론 사람은 변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큰 변화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을 보면 여전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고요. 그런데 제 성대모사까지 하고, 약간은 숨기고 싶은 과거의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까지 남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나는 정말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잡스럽든 아니든 아무튼간에 생각이란 걸 하다 보면 천천히 스며드는 물처럼, 그 생각은 안에서 바깥으로 점점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변하지 않은 사람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은 유난히 머릿속이 복잡하고 하루에도 이랬다 저랬다 다양한 생각과 생각이 부산의 교차로처럼 복잡스레 오가기에, 그 복잡함과 과다함이 저를 변화로 이끈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 글을 쓸 때 버릇이 있습니다. 거의 스치듯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쓴 글을 보여준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특별해서라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상황과 때가 맞물려서 자연스레 보여줬습니다. 그 이후로 생긴 습관인데, 제 글을 본 그 애가 그랬습니다. 네 글은 담백하다. 불필요한 수식어구가 없다. 이 말이 지금까지 저를 자가검열하게 하곤 합니다. 영화 쪽에 꿈이 있었던 입시생 시절, 한예종 최종 면접에서 드라마 'M'의 감독을 했던 교수님이 제 글이 너무 과하다는 말을 하셨었거든요. 그래서 그 아이의 말은 제가 발전했다는 말처럼 들렸고, 그걸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 버릇은 나중에 글 쓰는 걸 재미없게 만들더라고요. 세계적인 소설 거장들도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글이 장황해지고 수많은 형용사들을 남용하기도 하는데, 내가 뭐라고 나 혼자 보는 글에서까지 더듬거리나.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버릇에 버릇이 생겼습니다. 담백하게 쓰려는 자신을 한 번 눌러주는 버릇이요. 온전히 자유로운 느낌을 느끼고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니 글 쓰는 게 조금 자유로워졌습니다.
오늘의 글은 무언가 깨달았다거나 느낀 게 있었어 쓴 건 아닙니다. 사실은 저도 어딘가 올라오는 명언처럼 잘 정리된 깨달음에 관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정도도 저에겐 충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어떤 글을 쓰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거든요. 기록은 모두에게 필요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글을 적는다는 게 꽤 예술가의 행동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 모두 일기를 쓰면서 커온 사람들인데. 누구나 내 소소한 하루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겁니다. 위인전의 내용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도요. 제가 보여주고 싶습니다. 어느 날은 두서없습니다. 또 어느 날엔 꽤 괜찮은 글을 쓰기도 합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대로 쓰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잘 쓰지 못해도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들이 다들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제 글실력에도 한 번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소소한 하루들을 기록하며 일일일글 전도사가 되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