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시작해서 인생의 진리를 파헤치기 시작
어제저녁부터 기대하던 주말이 왔습니다. 이번 주말엔 뭘 해볼까 하다가 일본 여행을 목표로 일본어 기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밥을 먹고, 고양이들과 뒹굴거리다가 가장 편안한 옷을 겹겹이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 근처 백화점에 들어가니 항상 풍기는 따뜻한 버터 냄새가 가득해서 기분이 더 더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하루의 첫 일정의 시작부터 기분이 좋아지면, 그날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편이라,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확신하며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은 저녁까지는 기분이 좋을 거라는 게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없거든요. 우리 가족 모두가 쉬는 날이 겹친, 얼마 안 되는 날인데, 딱 아빠는 낚시를 가서 엄마, 동생과 셋이서만 우리가 좋아하는 저녁을 먹으러 가거든요. 아빠가 들어도 섭섭하진 않겠지만, 없을 때 편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자주 부재라 없는 게 편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안타깝지만 있을 땐 싫어지는 존재까지 되어버렸습니다. 요즘 갱년기인 건지 말도 안 되는 꼬장을 부리고 가만히 있는 저를 어떻게든 괴롭히고 싶어서 자는 시간에 티브이 소리를 갑자기 키운다던가 고양이를 괴롭힙니다. 그리고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꼭 내가 이렇게 하니까 화나지? 기분 상하지? 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빠에게 쓰기엔 웃긴 표현이지만 꽤 괘씸합니다. 그럼에도 소란스러운 게 싫어서, 저는 열심히 참으며 무대응 중이고요. 요즘 같으면 차라리 무관심했던 어린 시절의 아빠가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유치원생 때부터 아빠는 자주 못 보는 사람인데, 무관심해서 동생과 저의 생일도, 나이도, 다니는 학교도 몰랐으니까요. 아무튼 그런 아빠라서 그런지 이젠 없는 게 편한 존재가 되었지만요, 그래도 이런 아빠라도 아빠라는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빠 덕분에 내가 자식이 생긴다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행동들을 거의 모두 알게 된 것 같거든요. 그리고 계속 생각하고 검열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 같은 게 제 마음속에 생기기도 했고요. 나쁜 일이 항상 나쁜 일만 물고 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어릴 땐 조현병 걸린 친할머니와 그걸 닮은 듯한 아빠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엄마가 불쌍했습니다. 조금 더 자라니 이혼하지 않고 나약하게 구는 엄마가 싫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직까지 나와 동생 때문에, 직업이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들을 운운하며 아빠와 끝까지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엄마를 포기해 버릴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건 아빠 때문인데, 왜 우리는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엄마가 미운 건 미운대로 마음 한편에 남겨두고, 아빠를 내버려 둔 채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잘 지내자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에서 내게 주어지는 수많은 사람과 상황, 사건들 중 생각보다 오로지 내 선택만으로 내 인생에 들어온 것들은 얼마 없습니다. 이것을 제가 어릴 땐 남들과 다른 부모님을 보며 처음 알게 되었고, 남자를 사귀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의 폭이 정말 작다는 걸 또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인들 중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하나 봅니다. 인생에서 진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밖에 없다는 말이요. 내가 먹는 것과 움직이는 것, 딱 두 가지를 조절하면 결과가 따라오는 다이어트 말고는, 대학 입시나 취업도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회사나 학교에서 원하는 핏(요즘에는 컬처핏 면접도 하더라고요..)과 맞지 않으면 내 노력의 여부와 결과는 상관이 없어지곤 합니다. 그러니 벌어진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나쁜 것은 내버려 두고 좋은 것을 한 번 더 봅시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게 100% 내 탓은 아니라고, 몇 퍼센트는 다른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편하게 삽시다. 그냥 우리 모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나쁜 걸 보면 저러지 말자, 좋은 걸 보면 배우고 즐기자는 마음으로, 흘러가는 대로 상황과 상황에 맞추어 각자 잘 살아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