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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l 20. 2021

주둥이만 살아서는!

말보단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더 좋아!

나는 주둥이만 살아서 행동 없이 지껄이기만 하는 게 너무 싫다. 특히 날 걱정한다는 명목 하에 말만 뱉고 걱정한다는 제스처나 실질적 도움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느낄 때 더 그렇다. 내가 그런 것에 예민해서인지 나는 누가 밥 굶고 다니면 걱정되어 조그만 초콜릿이라도 쥐어준다. 내가 지금 당장 도울 여력이 없으면 걱정스러운 말이 안 나가기 때문일지도.


"어떡해"
"괜찮아?"


내가 베베 꼬였는지 감정이 메마른 건지 모르지만 저런 아무 쓸모도 없는 말을 왜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떡할지 몰라서 기분이 나쁜 것이고, 기분이 나쁜데 괜찮냐고 물어보는 건 날 위로하기보단 저런 모든 상황에 어물쩡 대처하는 말버릇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잠시 기복이 있을 때 빼고는 항상 찐 INTP이다. 사실 남들이 힘들어할 때 드라마틱하게 위로를 하거나 내가 네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뭔가 굉장히 말랑하고 감성적인 그런 것들을 잘 못해서 항상 미안하다. 속상한 걸 나에게 털어놔도 내가 공감하기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의 정보가 부족해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족한 감성을 채우기 위해 나는 힘내라고 작지만 기프티콘을 쏘거나 먹을 걸 챙겨줄 뿐이다. 

사실 이런 것도 하기 싫은데 정말 좋으면 내가 널 위해 준비한 거라며 전달할 때의 그 부끄러움이나 머쓱함을 무릅쓴 채 준다. 그런데 말만 하는 것보다 상대가 더 좋아하더라. 아마도 말은 앵무새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무언가 챙겨준다는 건 그 사람을 염두에 두고 물건을 고르고 사서 주는 그 모든 행위들이 전달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챙기는 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다. 너무 오글거리고, 괜히 그냥 있어서 준거라고 말할 뿐이다. 단지 내가 받아보니 좋았던 기억에 나도 그런 기억을 심어주면 좋겠다 판단해 이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 좋은 행동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 있다. 학교 선배 두 분과 미술학원 선생님이다. 신기한 건 세 명 다 나처럼 오글거리는 걸 싫어하고 조금 투덜대기도 하면서 행동만 놓고 보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처음 걱정과 진심을 느꼈던 건 새내기 때 팀플에서 만난 선배다. 이 선배는 처음엔 되게 어려웠다. 얼굴도 너무 석고상처럼 생기고 다들 웃고 떠들 때도 말도 없이 옆에서 하. 하. 하는 게 끝이었다. 그래서 팀플 진행 중에 어떤 교류도 없었다. 그때 나만 디자인과였는데 선배들이 그럼 내가 영상 편집을 하면 되겠다고 했다. 난 당연히 새내기라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는데, 모른다고 말하는 게 싫어서 하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편집 지옥이 시작됐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밤을 새우고 오면 얼굴이 상했다~하면서 잠시 찡그리고 어떡해를 시전 했다. 그 선배는 그때 아무 말 없이 날 보기만 했다. 그렇게 기분이 상한 채로 수업을 마쳤고 나가는 데 선배가 나에게 영상 편집을 같이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서 뜬금없이 같이 학생회관 건물에서 밤을 새우게 되었다. 그때 내가 밤을 새우게 되어 피곤해하고 밥도 못 먹어 꼬르륵대니 선배는 조용히 치킨을 사주더니 내가 먹는 동안 자기가 편집을 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게 진정한 걱정될 때 나오는 행동이구나 하고. 그 덕에 나는 무사히 팀플을 마쳤고 진짜 진심 어린 행동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같은 과 선배였다. 엄청 투덜대고 싸가지도 없어서 별로 안 좋아한 선배였는데 이 선배와도 팀플을 하게 되었다. 작업을 하다가 한 번 노트북이 고장 나서 작업한 게 다 날아갈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배가 졸업전시 준비를 하다가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추운 날 밤부터 새벽까지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고쳐주었다. 그렇게 내 노트북이 죽을랑 말랑 할 때나 내가 작업하다 어려움이 있을 때면 시간이 언제든 자기 일을 제치고 와서 고쳐주었다. 그래 놓고 나에게 저학년인데 수업도 많이 들어 걱정했다고 너무 수고 많았다며 학기말에 기프티콘과 간단한 메시지를 남겼었다. 같이 있을 땐 매일 갈궈서 정말 싫었는데 돌아보니 입으로만 투덜댈 뿐, 행동은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다. 


두 분 다 같이 지내는 동안은 입만 살아 동동 떠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별로인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오래 볼수록 진심은 입이 아닌 행동으로 나온다는 걸 알게 해 주었던 분들이고 입으로 위로를 잘 못하는 내게 행동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는 입으로는 위로를 하기 어렵다는 말.. 은 아니고 정말 '주댕이'만 나불대는 사람보단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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