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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l 21. 2021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내가 이럴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쓰레기

내 생리 전 증후군은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눈물이랑 화가 많아지는 것이다. 남들이 넌 참 해맑다 할 정도로 웃음이 많고 아재 개그에도 깔깔댈 정도로 기분 좋은 상태에서 생리할 시기만 되면 갑자기 눈물샘이 바다랑 연결된 듯 끊임없이 울기 시작한다. 생리통이 없어서 생리 전 증후군이 없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것도 증상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내가 너무 부정적인 건 아닌지 자책하며 살아왔다. 항상 문제가 있었던 날은 생리 전이었다. 잘 지내던 친구에게 뜬금없이 시비를 걸어서 싸우거나 혼자 불만을 가질 때, 잘 타던 썸을 확 정리해버릴 때, 아빠랑 싸우고 집에서 쫓겨났을 때, 남자 친구랑 헤어질 때 다 생리 전이나 호르몬 분비가 많아질 때였다. 질질 짜면서 나도 모르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화내가 웃다 하는데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까 싶다가도 이제 죽기 전까지 보지도 않을 사람들인데 뭐 어때 싶다. (아빠 빼고)


이미 망친 관계야 어쩔 수 없고, 앞으로 나도 주체 못 하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봤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 말하면 어떨까? 싶어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봤다. 


"난 한 달에 10일 정도는 감정 기복이 심해. 매일 우울할 거야. 니 한 마디에 울 거고, 네가 달래주면 더 울고, 네가 화내면 더더 울 거야. 내가 울어서 우리 사이가 틀어지지 않게 조심해줘."


적고 보니 완전 쓰레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건 이름과 취미를 말하는 자기소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외의 것들은 '나는 이런 사람인데 너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이런 모습을 보였을 때 트러블이 일어나는 건 들었음에도 날 건드린 네 잘못이야.'라고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계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걸 미리 말하는 건 일종의 경고이자 광고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모든 트러블은 "원래" 이런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경고, 내 단점을 인지하지만 고치기는 싫으니 네가 맞추든지 말든지라는 심리를 가진 나는 게으름뱅이라는 광고.


그렇다면 "원래"이런 내가 트러블을 안 일으키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없다. 원래라는 걸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원래 감정 기복이 있는 나는 저렇게 달마다 트러블을 일으키며 소중한 사람들을 놓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남들에게 내 감정 기복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한다면 그때부턴 정말 타지도 않는 쓰레기인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무지한 아기도 아니고 다 큰 어른끼리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는 건 절대 성립될 수 없다. 부모님은 해주시겠지만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주둥이만 살아서는! 에서도 언급했는데, 나는 "원래" 누굴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다 컸고 어련히 알아서들 하겠지라는 마인드로 살아와서 남들이 조언이 아닌 위로를 바라는 말을 할 때 감정적 공감을 하면서 챙기는 걸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난 원래 공감 못해. 그러니까 나한테 위로를 바라지 마."라고 하진 않는다. 일부러 상처 주려는 행동이 아니라면 저런 말은 정말 최악이다. 그래서 저 말을 삼키고, 나는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성격인데도 남들을 충분히 잘 챙기는 사람들을 찾았다. (저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잘 못하는 말 대신 행동으로 그 빈자리를 메우면서 나만의 위로나 챙김 방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정말 오글거리지만 딱 한 명. 내 변화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한 마디만 있으면 그때부터 억지로 하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더라. 


그러니 처음부터 완전히 '고친다'는 생각을 버려라. 안 그럼 힘들다. 그냥 주변을 둘러보면서 오? 좋은 행동이다! 싶은 건 따라 해 보고 그러다 누군가 알아주고 칭찬해주면 그때부턴 내 행동이 된다. 그러니 날 바꾸는 걸 어렵게 생각하면서 남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들도 처음엔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에 그들의 원래 그런 모습을 받아주겠지만 상대편은 당신 부모가 아니다. 세상에 부모님 말고는 날 것 그대로의 엉망진창인 날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자정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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