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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l 28. 2021

할 수 없는 말

들키고 싶기도 아니야,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지만 안돼

나의 평판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나의 평소 이미지를 생각하면 절대 말 못 하는, 마음에 묻어두는 비밀이 있다. 비밀이라는 거 못 견디는 사람인데, 말하면 내 인생의 큰 축이 흔들리는 일이니 입이 다물어지긴 하더라. 앞으로 누굴 만나도 말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한 번씩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말 못 할 비밀이 있을까? 정말 정말 큰 비밀 말이다. 누군가 알아줬으면 싶지만 내 입으로 말할 순 없어, 그럼에도 알아주고 안아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좀 지나고 담담해졌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그 생각이 떠오르면 눈물부터 나는 것 같다. 

태어나서 그렇게 비참해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웬만한 일로는 그 정도의 기분을 느끼기란 어려울 거다. 아무리 내가 날 사랑하고 믿으면 된다지만 결국 그 생각을 흔드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 노력들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도 몰랐던 그 비밀을 처음 알았던 건 사실 상대에게 말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이미 무덤덤해져 버린 그 눈빛과 태도는 내가 그 사실을 밝힐 수 없게 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미 감흥 없는 존재인데, 소중하지 않은데 겨우 그 사실 하나가 갑자기 이 모든 감정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삼키고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감정에 지배되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만 알게 됐다. 꾹꾹 눌러 삼키던 그 비밀은 결국 눈물로 터져 나왔고 상대는 더 이상 같은 길을 갈 수 없겠다며 날 떠난다고 했다. 그때 처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하지는 못했다. 끝을 보자고 말까지 한 사람에게 말해봤자 우리 감정만 더 흙탕물이 될 게 뻔하니까. 그렇게 빙빙 둘러 되지도 않는 엉뚱한 질문들을 했다. 


만약에 말이야, 만약 이랬다면 어떨 것 같아? 


이미 사실인 것을 가정하며 물었다. 대답은 결국 예상하던 대로였다.


별생각 없었다.


짜게 식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하긴. 별 생각이 없었으니 그런 태도로 대했겠지 하며 과거에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했는지, 조각나 있던 퍼즐들이 논리 정연하게 맞추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끝까지 말하지 않고 이 비밀이라는 것이 날 어서 떠나기만을 바랬다. 그때부터 나는 날 괴롭히는 데에 정말 열심이었다. 굳이 새지 않아도 되는 밤을 새우고, 아침엔 빈 속에 커피를 들이붓고 저녁마다 밖에 나가 토하기 직전까지 뛰어다니며 날 괴롭혀 나한테 꼭 붙어있는 것을 털어내려 애썼다. 그렇게 하면 나한테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비밀은 털어내려 할수록 점점 진해지고 선명해지며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결국 난 비밀도 털어내지 못해 다시 연락을 했다. 도와달라고. 그렇게 보고 싶기도 보기 싫기도 했던 사람을 다시 보았고 그저 기분은 좋더라. 그래서 사실을 말한 게 오히려 다행인가 싶을 때. 그때서야 비밀은 어느새 시들해져 약해져 있었다. 곧 떨어져 나갈 것처럼. 내 마음이 힘들 땐 한없이 날 괴롭게 하더니 편해지니까 조용히 날 떠나더라. 


모르겠다. 결국 비밀은 비밀로 남겨졌고, 일이 제대로 마무리된 건지 아닌지도 모른 채 그저 마음 한 구석에 그 흔적은 고이 남아 잔잔하게 날 괴롭힐 뿐이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알아채서 날 위로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도 알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도 날 모르겠다는 말, 참 싫어했는데 지금 내 기분을 나도 모르겠다. 


모든 일들이 내게 남기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며 모든 일에서 교훈을 찾으려고도 했는데 이 일은 그저 나에게 혼란과 비밀만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세상 모든 일이 나에게 자양분이 되는 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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