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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an 16. 2022

여전히 정의하기 어려운 나

작년 첫 1일과 마지막 31일 내 모습

  새해가 밝았다고 새로운 다짐을 하진 않는다. 귀찮다. 다만 매년 새해 했던 게 하나 있다.

과거의 나는 어땠는지 복기하는 것이다. 과거의 어느 날 똥을 쌌는데 잊어버리고 새로운 해 어딘가에 또 똥을 싸면 안 되니까. 올해는 제발 깨끗하게 지내기 위해 글을 적어본다.



  작년 첫날 나는 미친 듯이 미래를 걱정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 긴장하고 실패를 두려워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도 부끄러운 일은 무조건 감추려 했고, 잠시라도 쉬면 큰일 나는 줄 알아 쉬는 시간에도 쉬지 못했다. 욱신욱신 머리가 터지도록 생각했다. 사부작사부작 뭐라도 해야 했다, 나는.


  마지막 날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숫자만 바뀐 2022년도 마찬가지다. 걱정과 의미부여를 안 하고 산 건 처음인데. 그 모습이 요즘 참 좋다. 쓰레기로 머리를 꽉 채우고 살던 사람이 요즘은 때리면 텅-하고 맑은 소리가 날 것처럼 텅 빈 머리를 이고 살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생각은 끊임없지만 꽉 차지 않는, 감당 가능한 정도다.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내가 만나는 사람의 영향이 크다.


  나를 알 수 있게 한 건, 그러니까, 몰랐던 모습을 발굴해낸 건 연애다. 각자 굉장히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상대에 따라 나는 정말 다른 사람으로 변해왔다.


- 각자의 점을 향했던 연애는 닿지 않는 거리감에 작은 것들에 연연하는 모습을 이끌었다.

- 서로를 향해 자꾸만 부딪혔던 이는 항상 날카롭고 극단적인 모습을 이끌었다.

- 한 방향을 향해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는 이는 단순하고 평온한 모습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 난 이 모습이 좋다.


  작년 연애들은 똥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연애 속 내 행동들.

왜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들을 눈 감아주고 혼자 숨어 아파했을까. 변하지 않을 걸 알면서 당장의 화를 왜 눈앞의 사람에게 내비쳤을까. 왜 그 안에서 나와 상대를 아껴주지 못했을까. 수많은 왜-라는 질문의 답을 다 알면서 모른 척하려고 했다.


  글이 정리될 즈음 비슷한 속도로 정리된 내 생각은,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가 아닌, 좋은 나를 만나려고 하는 연애를 하자이다. 그 관점을 달리 한 후 작년 말의 새로운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순간이 새롭고 재밌다. 1일부터 행복하던 나는 31일엔 어떤 사람이 되어 올해를 마무리할지가 기대될 정도다.


*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쓰니 정리 안된 글이지만 남기고 싶은 생각이라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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