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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l 13. 2021

가치관

친구와 인맥의 차이에 대한 고민

 오늘은 뭘 적을까 하다가 올해 들어 가장 많이 고민했던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나는 정말 어릴 때 인간관계에 대한 보편적이진 않은 경험들을 했다. 풋풋해야 할 첫 연애에 느꼈던 공포, 성 정체성 혼란, 왕따, 이사하며 사라진 고향 친구들과 유년 시절 추억.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고, 사람은 필요에 의해 사귀는 기브 앤 테이크 관계일 뿐이고 나 자체를 오랫동안 봐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이기에 친구는 적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전엔 굉장히 부정적인 이유들로 이 가치관을 떠받들고 있었다면 지금은 꽤 중립에 가까운 이유들로 가치관의 근거들이 많이 바뀌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리고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퇴사 전, 퇴사 후 인간관계 때문이다.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다. 공고 출신에 동기들 중 본인만 30년 넘게 회사에 남아 있었고 능력을 인정받아 부산에서 연구소로 올라와 더 스케일 큰 일들을 해내셨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따랐고 아버지는 더 가정에 소홀했다. 무조건적으로 자기를 돌봐주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자신의 능력만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잠깐의 코랙만을 좇았다. 딸로서 바라보면 절대 가정적이지 않고 왜 결혼을 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혼자만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굉장히 감정이 없고 표현도 안 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서운하기보단 집에 있으면 불편한 동거인 1 정도로 생각했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그동안 많이 서운했지만 그 감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바뀔 것 같지 않아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며 자기 최면을 걸고 살아오니 무감각하게 아머지를 관찰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혼자만의 삶을 살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혼자서 살아 버릇해서 관성대로 지금까지 지내는 것 같다. 아버지는 혼자 즐기는 취미가 많은 사람이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을 했지만 매일 저녁 테니스에 뒤풀이까지 했다. 주말 새벽엔 빠지지 않고 테니스를 가서 오후 3시쯤 와서 낮잠을 잤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주말 내내 배를 빌려 낚시를 갔다. 우리 이름도 헷갈렸고, 몇 살인지, 무슨 학교에 다니고 관심사가 뭔지도 몰랐다. 그렇게 혼자서 살다가 내가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고 여러 교수님들의 피드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면 날 칭찬하기보단 밖에서 자랑거리 삼았다. 내가 여러 대학에 시험을 쳤을 때도 자기가 밖에서 말하기 좋은 이름 값하는 학교에 들어가길 바랬고 다행히 붙어서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보단 밖에서 자랑을 했다. 이렇게 아버지는 우리 과 교감 없이 밖에서만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퇴사를 하자마자 회사와 관련된 모든 인맥들이 끊겼다.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유순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단지 그것들이 밖으로 향해서 그렇지. 아무튼 아버지가 갑질도 안 했고 오히려 우리 가족들 밥 사줄 돈으로 바깥사람들 밥을 사줄 정도로 밖에 정스럽게 대했는데 의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회사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붙어 있을 뿐 진정한 무언가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회사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없는 아버지는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밖에서 어느 정도 노련해진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는 때 덜 탄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살기 팍팍하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고 본인과 본인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쓰기도 부족한 시간이다. 이때 나는 남은 시간이 있다면 그들보단 내 능력을 쌓을 것이다. 결국 인맥에게 버려지지 않으려면, 아니, 인맥이 자동으로 나에게 붙으려면 내가 능력 있을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날 발전시키지 않고 밥 한 끼, 술 한 잔 더 기울인다고 그들에게 콩고물이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걸 아버지를 보며 깊게 깨달았던 것 같다. 아버지를 감정 없이 바라보니 더욱 일련의 사건들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걸 깨닫게 해 준 아버지가 있어서 좋다. 그리고 아버지가 기본 성품은 좋기에 그것이 뒤늦게나마 가정으로 향해서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어서 아무튼 해피엔딩이다.


 다음은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게 해 준 친구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애칭 같은 거 진짜 완전 많이 많이 싫어하는데 이 친구를 다들 림-이라고 부르기에 림이라고 하겠다. 림은 거의 9년이 되어가는 가장 오래된 친구이다. 아마 부산에 이사 온 후 가장 오랫동안 지낸 친구일 것이다. 이 친구는 나에게 처음으로 단짝이라는 게 뭔지 알려줬다. 어릴 때 나는 감정이 없는 아이 치고는 눈물은 많았고 좋게 말해서 순진했다. 악의로 다가와도 잘 몰랐고,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해도 진짜로 기분이 하나도 안 나빴다. 그런데 나도 몰랐던 건가 보다. 쌓이다 보니 나중엔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친구들을 경계했다. 오는 사람 경계하고 가는 사람은 어차피 갈 거 빨리 가버리라고 재촉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림을 만났을 때도 그저 매일 학원 가기 전 같이 밥 먹고 하원 같이하는 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림이랑 약속을 했다가도 다른 약속이 생기거나 그냥 나가기 귀찮으면 파투도 잘 냈고, 림이 뭘 챙겨줘도 나는 별로 챙겨줄 생각도 안 했다. 림도 그런 것에 서운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한결같이 날 대해서 편하게 잘 지냈다. 그러다 한 번 학교에서 비상연락망을 위해 친한 친구 2명의 신상 정보를 적어오라고 했다. 난 당연히 적지 못했고 그날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재촉에도 꿋꿋이 난 친한 친구 없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학원에 갔는데 림이 나에게 물었다. 자기는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나서 제일 위에 적었는데 너도 날 적었냐고 물었다. 그런데 미친놈이 생각도 않고 아무도 안 적었다고 했다. 그런데 림은 당황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더니 날 붙잡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너랑 나랑 매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하원을 하면서 이야기도 엄청 나누고, 같이 열심히 해서 서울대반에 들어와서 더 친해졌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 지보다 자기가 나를 좋은 친구고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니 누가 물어도 제일 친한 친구는 나라고 답할 수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 날 어떻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상처 받기 싫어서 옆자리도 내어주지 않았는데 림은  그런 것이 너무나 당연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사람들을 대할 때 조금 더 편하게 대했다. 내가 좋으면 좋다고 하고 아니 말고라는 생각으로 대했다. 처음엔 거부당하면 상처도 받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니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졌고 정말 내가 원하는 친구들을 내 옆으로 당겨올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당겨도 안 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아마 어떤 부분에서든 그가 날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니 내가 더 이상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놓으면 된다.) 이런 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친구는 언제든 옆에 있어줄 거라는 신뢰를 준 것 같다. 그래서 고민 상담도 많이 받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나에게 쉽게 다가올 숭 길을 열여준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림 덕분이다. 이 친구가 나에게 그런 신뢰와 함결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놓쳤을 것 같다. 


 여전히 사람 관계는 어렵다. 관성대로 사는 게 사람이다 보니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나 우유부단한 사람들처럼 내가 원래부터 멀리하려 했던 부류의 사람들이 날 힘들게 하면 모든 걸 확 놔버리고 싶고 모든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도 든다. 그래도 앞으로도 좋은 사람은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가능성을 놓지 않고 계속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나도 아직 이 부분에 대해 생각 중이고 무엇이 엃은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정리가 던 된 조각들이 글 밖으로 드러나 매끄럽진 않지만 지금 정리 중인 내 생각을 이렇게 기록해두고 당장 내일 또 변할지도 모르는 나읫 ㅐㅇ각과 비교하며 열심히 옳은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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