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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l 15. 2021

기분이안 좋냐고물어보지 마세요.

원래 그 표정이에요.

 다시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왔다. 감정 기복도 완만하고 리액션도 없는 이전의 나로. 비대면으로 집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지금 교류하는 사람은 매일 안부 묻는 친구 두 명과 매일 보는 헬스장 관장님과 중국인같이 생긴 근육 아저씨, 한 두 달에 한 번 보는 미용실 선생님. 친구와는 만나지 않고 DM으로만 내가 하고 싶을 때 연락하니 너무 편해서 좋고 헬스장 분들은 날 모르는 사람들이라 거리감이 느껴져서 너무 좋다. 미용실 선생님은 발랄해서 자주 보면 힘들 것 같은데 가끔 한 번씩 밝은 기운을 느껴서 좋다. 나는 가족과 오랜 친구 이외의 사람 중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친해진, 그렇다고 엄청 친하진 않은데 앞으로도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힘들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나오는 포지션이 있다. 눈치 있는 착한 사람. 


 일부러 하진 안고 오히려 일부러 안 보려고 해도 그 사람의 표정이나 분위기 같은 변화하는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마구 쳐들어온다. 그럼 그냥 자동으로 그 사람 기분에 맞춘 행동이 나온다.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분위기가 슬쩍 무거워진다 싶으면 농담을 하기보단 조용히 곁에서 손을 잡아주면서 옆에서 조용히 니 기분 풀어지기를 기다릴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우쭈쭈 좋아하는 사람에겐 맞춰서 한다. 눈치 보는 건 아니다. 나도 내 기분이 안 좋을 때 말 안 해도 눈치 있게 이런 행동을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하는 행동이다. 말하자면 역지사지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실 이 행동이 내가 가진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득을 본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이런 성격에 의문을 가지고 피곤함을 느끼는 건 날 이 포지션에 가둬놓는 사람 때문이다. 그들도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나 또한 아니다. 단지 그들은 내 이런 점을 높이 사서 좋게 보기에 칭찬을 하는 것이고, 나 또한 그들을 좋아하기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걸 유지하려 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행동은 그 당시에는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자동으로 나오지만 그들을 만나고 온 날엔 완전 녹초가 된다. 처음엔 그냥 대중교통 타고 다니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경기도민이 서울 사람을 만나면 기본적으로 느끼는 피곤함. 


근데 생각해보니 어쩌다 그들 앞에서 내 기본 표정을 보이면 항상 그들이 하는 말 때문에, 할지도 모르는 말 때문에 피곤함을 느낀다. "너 울어?", "너 삐졌어?", "기분 안 좋아 보여", "어디 아파?"


 기분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다. 그냥 그때 잠시 그들과 연결고리가 끊긴 채 나만의 생각을 하며 혼자 있을 때의 편안함을 느끼는 거다. 잠시 보여주는 내 편안한 모습. 아무것도 산경 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다. 근데 그걸 보고 기분 안 좋냐고 물어보면 다황스럽다. 항상 편두통을 달고 살고 생각이 끊이지 않는 피곤한 사람이라 조금 그래 보일 순 있지만 그게 내 기본 상태인데.


앞으로는 누굴 만나도 적당히 눈치 있고 적당히 내 모습도 보여줄 거다. 상대가 내 이런 쳐진 모습을 보면 영향을 받을까 봐 괜히 약간 기분을 띄운 채로 살았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한참 참았다가 풀린 내 모습에 눈치 보거나 기분 안 좋아지는 그들을 모습이었다. 우리가 평소 자주 하는 말 중에 그런 말이 있지 않냐. 백날 잘해줘 봐야 하루 못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나쁜 사람들이 한 번 잘해주면 그 한 번에 사람들이 목을 맨다. 그런데 착한 사람들이 하루 못하면 의외다, 너무하다, 너 원래 안 그러잖아 하면서 백날을 부정하는 말을 한다. 아 너무 싫어. 


 요즘처럼 신경 써야 하는 사람도 이제 없고 고양이들과 함께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공허한지 자유로운지 모를 기분을 느끼지만  누군가를 신경 쓰고, 그들도 나를 신경 써주고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 그건 참 좋다. 그런데 한 가지, 그냥 이렇게 살고 싶지만 적어도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를 위해 적어도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내 마지막을 봐줄 누군가가 있어야지 생각은 한다. 감동적인 이벤트를 해주고 날 항상 챙겨주고 그런 거 피곤하니까, 우유부단하고 정신 사납게 하는 사람 말고 항상 옆에 있어줄 것 같이 안정감을 주는 조용한 사람 하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상태로는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상처를 줄 것 같아 별로 생각이 없다. 아마 자리 잡고 자립하기 전까지 우선순위는 돈 모으기와 고양이랑 같이 살 집 구하기, 스튜디오 차리기, 취미 생활하기 정도가 아닐까 싶다. 기대도 없으니 행복도 없지만 대신 스트레스가 없어서 오히려 좋은 생활을 살고 있다.


 적고 보니 너무 회의적으로 적은 것 같아 마지막은 귀엽게 마무링

우리 알레르기  윤여름

우리 뚱땡이 윤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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