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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l 16. 2021

드디어 하나

재밌는 삶을 위한 인생 동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집은 너무나 자유롭다. 아무런 터치 없이 방목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영향인지 나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없지만 내 가치관이나 인생동기가 뭔지 몰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답을 찾아 헤매는 인생을 살고 있다. 피곤하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살겠지 하는 생각으로 "당연한 피곤함"에 적응 중이다.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바라는 게 없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며 다그치거나 성적표가 나오는 날을 공포의 날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느 기준을 잡고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를 위해서는 어떤 동기를 찾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공부는 하고 싶을 때만 하고 인종 구분이 어려워질 만큼 밖에서 뛰어놀았다. 그렇게 삶이란 뭔지, 삶을 어떻게 살야아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정말 날 것처럼 인생을 살았다.


보통은 부모님이 사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그것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격도 비슷하고 정치색이나 고정관념도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을 보면, 아버지는 놀러 다니기 바빠 보였고, 삶의 목표는 친구와 술만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취미에 쓰는 돈을 메우기 위해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여유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 둘은 각자 즐기는 삶, 버티는 삶을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내 삶에 적용할만한 건 없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인생에 즐거운 것도 없었고 어머니처럼 악착같이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도 모르겠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몰랐다.


단지 어렸을 적 어머니가 딸에게 시키고 싶었던 발레와 미술, 피아노를 내가 하기 시작하며 내 재능을 일찍 발견했다. 미술이었다. 뇌가 스트레스를 받기에 안 좋은 기억은 미화된다고 하던데,  4살 때 미술학원에 다닌 시절을 생각하면 여전히 안 좋은 기억만 난다. 나는 선생님의 욕심으로 독방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끝없이 넓은 2절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채워나갔다. 말 없는 아이라 그냥 시키는 걸 했을 뿐이었다.


단지 그때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그래서 꾸준히 미술을 했고 날 위해 부산으로 이사까지 가시면서 내가 미술 하는 걸 지원해주셨다. 


사실 지금도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있는지를 모르겠다. 아마 원하는 걸 쉽게 가져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림상을 받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면 상을 받아왔고, MP3가 가지고 싶으면 성적을 잠시 올려서 받아냈다. 조금 더 커서는 어머니가 조건을 내걸지 않고 사고 싶다는 건 다 사주셨다. 그러니 내가 노력할 필요도 없고 뭔가를 성취했다는 기쁨도 없었다. 그러니 인생의 흐린 점은 아예 지워졌다.


그렇게 한량처럼 살다가 등록한 입시학원에서도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축에 속했다.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잘 그리니 당연하게 생각했다. 공허했다. 주변을 보니 나보다 못 그리는데 눈을 반짝이며 나중에 자기가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하는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에겐 그렇게 쉬운 게 아니더라. 그들은 다들 자기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른들의 영향을 말했다.


아버지가 애니 마니아라서 집에 애니메이션이 많아 자연스럽게 꿈을 가지게 되었다거나 이모가 만화가라서 그림을 많이 접했다거나 집이 부자라서 명품 옷에 관심이 생겨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무조건 부모가 이런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완벽한 사람만 부모가 돼야 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그런 걸 몰랐을 수도 있다. 알지만 현생을 살기에도 벅차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다만 어른이 백지상태인 아이에게 삶의 목표나 방향을 잡는 길잡이가 되어주고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지원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내가 처음으로 남을 위해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어른으로서 첫 연애에서다. 


이전까지 나는 내 한 몸 건사하며 대강 살다 이 세상 하직하는 게 목표였다. 누군가를 만나서 지지고 볶으며 귀찮게 살고 싶지도 않았고, 말도 못 하면서 하루 종일 징징대는 아기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생 목표가 민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다 하직하기였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나면서 내 삶이 조금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공부를 하고 싶으면 연애를 하라고 하지 않냐. 내 경우에도 그랬다. 아마 연애가 하고 싶다기 보단 사람이 좋아서 한 연애라서 더 많은 것들을 건진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오히려 굴곡 많은 연애를 하게 되어 배운 것이 많아 회피하고 싶은 일들ㅇ르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려 하는 부분에서 너무나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론 오히려 좋았지 않나 싶다. 가장 좋았던 건 처음으로 다른 이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만드는 밥은 그저 배 채우는 밥일 뿐이다. 그런데 다른 이를 위해 만드는 밥은 조금 다르다. 맛있다는 한 마디에 웃는 얼굴까지 보면 며칠 동안 기분이 좋아지는 밥이다. 거기다 내 밥을 만드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건강을 생각하면서 레시피도 찾아보았고, 잠시 요리를 취미로 만들어주기도 하는 밥이다. 상대가 날 위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고 내 삶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살게 해 주는 동기가 되었다.


그 동기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점점 구체적으로 커져갔다. 결혼해서 같이 살면 어떨까?  아기가 생기면 어떻게 키워야 좋을까? 까지 생각하며 그 미래에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아이가 내 인생의 큰 동기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내가 못 누렸던 부모의 멋진 삶을 보고 배우며 자립해서도 즐겁게 삶을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내 흑백 인생에 조금씩 다양한 색들이 보이며 소소한 재미를 찾아가게 되었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인생은 자기 것이고 동기도 자기를 향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인간은 자기만족보다는 남의 시선과 반은, 즉 남들에게 많은 동기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에게 충분한 용돈을 드리는 삶, 아내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남편, 아이들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항상 맛있는 밥을 해주는 엄마처럼 남을 내 인생 동기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날 위해 산다면 노력보다는 조금은 헐렁하게 살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다른 이들을 보며 했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그래서 남자 친구를 사귀면서 한 생각이지만 그보다는 훗날 생길 나만의 아이가 내 인생 목표가 되는 것이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을 반전 시는 것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고 그 아이에게 삶을 이렇게 사는 거라고, 입보단 몸으로 보여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애가 지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요즘은 규칙적으로 살고 하루에 최소 한 가지의 일을 해내려 하고, 열심히 사는 삶을 위해 건강을 챙기며 운동도 하고 건강히 먹으려 하고 있다.


내가 부모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될 수도 있기에, 되고 싶기에 그 아이에게는 내가 살아온 삶보다는 조금 더 다채로운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서, 조금 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서 


내가 조금 더 똑똑해지고, 나만의 가치관을 찾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인생 동기를 하나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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