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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un 06. 2022

나의 도덕이 사라졌다.

옳다고 믿어 왔던 강한 신념이 깨지던 날

 어린 시절부터 뻣뻣하게 자라왔다. 어른을 보면 인사하라는 어머니 말씀에 온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다녔고,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는 말을 들은 후엔 선생님께서 성적을 더 주셨다며 점수를 깎기도 했다. 말이 없던 나를 만만하게 여기던 친구에게도 나쁜 말, 손찌검은 나쁜 것이니 아무리 당해도 어떤 반격도 하지 않았다. 항상 내 욕망을 억누르고 내 도덕이 그어 놓은 금을 넘지 않으려 했다.


 살아오며 속했던 모든 공간에서 나는 구부러뜨리려고 하면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고집쟁이 었다. 부모님이 과하게 도덕성을 주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는 사회에서 보면 좋은 사람이었다. 좁은 길에 한하여 차가 없으면 슬쩍 길을 건너고, 금지 팻말이 붙은 곳에서 금지된 행동을 하기도 했었다. (별 건 아니고 잔디 밟지 말기 정도의 행동 말이다.) 도덕을 너무나 신성시 여겼다. 그래서 남들이 도덕을 어기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악인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내 작은 인생에서 도덕은 내 삶의 지도였다. 지도만 믿으면 길을 잃지 않았고, 무조건 옳은 도착지에 다다를 수 있다 생각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하나의 길만이 옳다 생각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걷다가 불쑥 튀어나오는 사람들의 그만두라는 말들이 나를 흔들었다. 너무 어지러워 걸음을 멈추고 쉬면서 지도를 다시 펼쳤다. 쉬면서 찬찬히 본 지도는 달랐다. 내가 가려던 도착지는 다양한 길과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은 가장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가장 정확하게 도착지점과 연결되지만 다른 곳으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외통수 길이었다. 나는 가장 험한 길을 걷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도착지에 가다가 다른 길로 빠져 다른 곳에 도착할 수도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도착지에 가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길도 있었다. 나만이 고집쟁이처럼 이 길이 옳다며 외로이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상사로써, 어른으로써의 옳은 행동들이 있다. 나만이 생각보단 사회적 기준에 내 생각이 첨가된 기준이었고, 나 자신부터 그 기준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나에게 가식과 거짓으로 점철된 이가 본인에겐 유한 잣대를, 나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내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런 동시에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 내가 만든 것들은 자신이 만든 듯 행동했다. 그때 나는 이건 틀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윗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생각했다. 내부고발자가 되었다는 소리다. 


 내가 말하면 이제 이 공간은 깨끗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아무리 안에서부터 썩어가도 사람들은 혼란보단 평화를 좋아했고, 평화를 깨뜨리는 이는 의도에 상관없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그동안 꼭 쥐고 있어 손때와 땀에 절여진 지도를 버리고, 길을 벗어날 것이다. 길 옆에 있던 푹신한 풀밭 위 나무가 만들어준 그들 아래 앉아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며 잔잔한 하늘을 바라볼 것이다. 이 땅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든.


이젠 다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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