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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도동 Jan 19. 2024

일일일글 [시스템]

더럽고 게으른 건 어쩌면 체계가 없어서일지도 몰라.

- 내 유튜브 알고리즘 키워드 3 대장 중 하나는 <청소>다. (두 번째는 <정리>다.) 나의 청소 역사는 첫 아르바이트와 함께 시작됐다. 매장별로 사장님이 만들어 놓은 청소 규칙이 있는데, 매일 배우고 실행하며 느낀 건 우리 집도 그리 깨끗하진 않다. 정확히 말하면 효율적이고 쉽게 청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거창한 게 아니다. 밥을 먹었는데, 행주가 안방 드레스룸 끝 창문 밖에 걸려있다면, 바로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귀찮은데, 대충 휴지로 닦자." 아니면 아예 안 닦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행주가 식탁 옆 건조대에 말려져 있다면? 일부러 안 닦는 놈이 아니라면 그 집 식탁은 식사 후 항상 깨끗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비단 청소뿐 아니다. 동선과 시스템을 미리 준비해 놓으면, 일의 난이도는 반 이상 쉬워진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그림을 예로 들어보자면,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런데 시간이 없네. 그릴 도구도 없네.라는 흐름으로 가면 안 된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네. 그럼 어디서든 생각나면 그릴 수 있게 항상 아이패드와 드로잉북을 가지고 다니자. 그래서 요즘 내 가방이 많이 무겁다. 그리고 매일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 이렇게 그림 그리는 버릇을 들였지만 유지가 쉽지 않다. 그럼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즘따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복잡해서 이 시간이 버거워지고 있다. 이럴 땐 컬러와 단계를 과감히 줄여버린다. 예전엔 한 장면을 그리는 데에 수많은 컬러들이 필요했지만, 진짜 필요한 색만 컬러 차트로 남겨놓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럼 나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컬러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고, 부담이 줄게 된다. 무슨 일이든 부담을 덜어야 오래간다.

- 예전엔 이런 시스템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성실했기 때문이다. 잔꾀를 부리고나 쉬운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을 안 좋게 보는 사회적 시선이 느껴져서 일부러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 모든 일을 쉽게 만들어주는 시스템은, 어떻게 하면 일을 쉽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꾀부리는, 아니, 현명한 사람들만의 소유물 아닐까 생각한다. 


- 다들 꾀부리며 살길 바라며, 시스템에 대한 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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