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월
내 삶에 아기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여름 급하게 시작한 항암치료로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한동안은 아기나 임산부 관련한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을 만큼 마음이 힘들었다.
항암을 시작하고 한창 몸이 안 좋을 때 만원 지하철을 타서 비척거리며 서서 가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후다닥 자리를 다른 이에게 양보하길래 보니, 임산부였다.
자리에 앉는 그 얼굴이, 잔뜩 부른 배가 좋아 보였다.
어찌나 꼴 보기가 싫던지.
자기가 좋아서 임신해 놓고, 낳아서 남 줄 것도 아니면서, 그것도 열 달이면 끝나는 고생을 왜 그렇게 유세야?
나보다 몸이 힘들어 마음이 힘들어?
왜 지하철 칸칸마다 임산부석까지 만들어서 전 국민이 배려해 줘야 돼?
이런 생각이 한번 들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실은 그동안 주변인들의 임신 소식, 아기엄마 친구들이 속도 모르고 보내오는 아기 사진들, 그런 모든 것들에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을 시작으로 온 세상 임산부들, 유모차들, 아기들, 유치원생들, 초등학생들까지 눈에 띄는 족족 치워버리고 싶었고, 한동안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살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나는 어려서부터 되고 싶은 게 딱히 없던 사람이었는데
꼭 되고 싶은 것 하나가 엄마였다.
내가 꼭 갖고 싶었던 그 한 가지를, 남들은 아무 노력 없이 거저 얻는 것 같아 너무너무 분했다.
쟤들이 나보다 열심히 살았어? 나보다 착하게 살았어?
폐암을 알고서도 든 적 없던 억울하다는 생각이
아기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강렬해서 내 하루하루가 온통 지배당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저 마음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숨기던 시기였다.
신랑에게는 신랑이 너무 마음 아파할까 봐 말하지 못했고 친구들은 모두 아기를 갓 낳았거나 가졌거나 계획 중인 단계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그런 것들보다도, 나에게 저런 마음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정말 괴로워질 것 같았다.
그 무렵 친구에게서 5개월 딸내미를 데리고 찾아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약속을 은근히 미루어도 보았지만 친구가 끝끝내 오겠다는 데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아기를 가까이서 보면, 엄마가 된 친구를 보면, 내가 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까 봐 잔뜩 움츠러든 채 친구를 맞이했다.
우리 집에 도착한 친구는 그날이 딸과 함께하는 첫 외출이라고 했다. 바리바리 아기 짐들을 싣고 진땀 빼며 운전했을 친구를 생각하니 세상 모든 아기 엄마들을 저주하던 마음에 죄책감이 일었다.
아기는 우리 집에서 잠도 자고 기저귀도 갈고 제 집에서처럼 별 걸 다 했다.
그러다 아기 밥때가 되자 친구가 내게 분유를 먹여볼 기회를 줬다.
성격 좋은 아기는 처음 만난 내 품에 안겨서도 한 번을 쉬지 않고 꿀떡꿀떡 분유 한통을 싹 비웠다.
팔다리에 온통 힘을 주고 어찌나 열심히 먹는지, 온몸으로 '나 살아있어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 눈동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아기의 까만 눈동자는 내 턱 바로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기를 안고 있는 인간이 얼마나 못된 생각도 했었는지 꿈에도 모르는 채 내게 온몸을 맡기고 있는 그 두 눈은, 내 눈을 한순간도 피할 줄을 몰랐다.
한 팔에는 아이를 안고 한 팔에는 분유를 들고, 나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 시선 앞에 드러난 그간의 내 감정들이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 억울과 분노, 질투와 원망. 이 무의미한 것들은 다 뭐였을까.
우리가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봤을 때, 나는 저런 감정들 너머로 갈 수 있었다.
내가 아기를 받친 채로 줄줄 울기 시작하자 아기가 놀라서 분유 먹던 입을 뗐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속에 있던 울음을 전부 토해냈다. 재발 소식을 듣고도 울지 않은 나였다.
오랫동안 잔뜩 웅크린 채 한껏 세우고 있던 내 가시들이 너무 쉽게 스러져 내렸다. 이 작은 아기는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걸.
고맙게도 친구는 ‘나도 아기 밥 먹이다가 가끔 울어’ 라며 놀라지 않은 척을 열심히 해줬다.
고마워 솔아, 나에게 그런 소중한 기회를 줘서.
덕분에 내 안에 그때까지 남아있던 향할 곳 없는 미움이 거의 덜어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