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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Oct 10. 2021

라면을 먹으며

죄책감은 잠시 잊자. 결국 그 책임은 언젠가 돌아오니까

  라면이 땡긴다. 


  배도 고프고, 배달을 시키기도 애매하다. 뭐 그렇다고 배달을 시켜서 맛있는 것을 혼자 먹기도 애매하다. 굳이 배달료를 지불하고, 2인분을 시켜가며 라이더를 고생시키는 것보단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 두 봉지를 샀다. 


  늦은 점심.

  나는 보기에도 과하게 매운 라면을 먹었다. 연휴의 딱 중간에서 누구처럼 여행을 가고, 집에서 게임을 하면 좋았을 건데. 나는 일을 하고, 일과 관련된 전화를 받고, 부모님 집에 가다 보니 점심을 두 시간 넘겼다.   

   

  너무 죄책감 들게 맛있게 생겼다.     


  라면을 조리하면서 가스불 앞에서 문뜩 들었던 생각이다. 저걸 먹을 거라면 그냥 굶는 게 나중에 후회를 안 할 것 같은데. 결국 젓가락을 들었다. 붉은 라면 국물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청량고추도 썰어 넣었다. 기왕 먹는 라면이다. 그냥 최대한 라면 봉지 사진처럼 먹고 싶어서 넣을 것도 다 넣고, 하나로는 부족해서 두 개를 넣어서 꼬들꼬들하게 면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제법 맛나게 보였다. 


  라면에는 역시 갓 담은 김치다. 얻어 놓은 김치통을 꺼내서 유튜브를 보면서 먹는다. 이 순간은 김준현도 부럽지 않다. 라면 예찬이라면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작품보다 더 말할 것 같다. 20분을 그렇게 미친 듯이 먹고는 설거지를 하고, 양치를 하고 원룸 방 벽에 기댄다.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라면 먹고 잠들었으니, 나는 소가 될 나보다.     


  속이 좋지 않다. 오랜만에 먹은 라면이다. 또 매웠다. 그리고 낮잠까지 잤다. 그래도 먹을 때 죄책감이 들게 먹었다. 조심하지 않고 격하게 라면을 먹었다. 결국 후회가 된다. 그래도 휴직 전 느꼈던 매일 먹던 라면처럼은 죄책감은 줄었다. 후회 없이 라면을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없었다. 늘어나는 살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날 밀어 넣었고, 90kg까지 체중을 증가시켰다. 

  참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직을 하면서도 라면을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점심에 먹고 싶었던 라면을 나는 결국 자정에 편의점을 달려가서 야식으로 먹었다. 참았더니 고통만 늘었고, 죄가 더 붙었다. 그때부터는 먹고는 걸었다. 라면을 먹은 것에 대한 책임이라는 청구서는 걷는 것으로 갚아서 상환하니 이런 순간에는 죄책감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덕분에 지금은 소가 되지 않았다.      


  정말 문제는 책임을 다 할 수 없는 죄책감은 어쩌지?     


  살면서 라면을 먹는 정도의 소소한 죄책감은 고민할 것도 아니지만, 휴직하면서 나는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니 살면서 참 많은 상처를 주면서 살았다. 그리고 그 청구서가 한 번씩 올 때마다 나는 몹시 괴로웠다.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처를 주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떠오른다. 가을이라 그럴까? 어제 본 갸녀린 초승달이 짠해서 그랬을까? 비도 오고, 거리의 가로등이 너무 밝은 오늘 잠. 라면을 먹고 그 미안함에 쓸쓸해지는 가을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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