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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Oct 25. 2021

시간이 리필된다면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인생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힘든 와중에 그러한 자리에서 나오는 말들은 내 의식과 행동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더러는 인생의 자랑이고 비관이고 변명이고 후회였다.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내 말에 잠시 생각해봤다.  

   

  시간이 리필이 된다면     


  후회의 다른 표현일까? 최근에 나에게 시간을 돌릴 수 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아하는 커피는 리필이 되고, 빈 술잔을 채우는 법은 있지만, 과거를 되돌리는 것은 내 선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시간이 돌아간다면 정말 달라졌을까? 그 사람에게 오히려 묻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의미가 없었다. 왜냐면 시간이 돌아간다면 아마도 그 상처도 되돌아갈 테니까. 난 그때로 돌아가기 싫었다. 

    

  시간이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기 위해서였어.

    

  나이가 40이 되어가니,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솔직히 더 꼬장꼬장해지며, 편견과 아집은 심장에 굳어버린다. 이른바 꼰대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나는 아니라고 항변해도 이미 꼰대가 되어버렸다. 내 나름의 틀 속에서 누군가를 평가하고 남에게 이야기하는 순간에 얼마나 스스로 추해지는지? 난 요즘 절실하게 느꼈다. 


  넌 다를까? 시간이 리필된다고 해서?    

 

  물론 돌아가면 하고픈 것들이 많다. 10대였다면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했을 것이다. 20대 초반이었다면, 견문을 넓히는 시도를 많이 했을 것이고, 취업 준비도 욕심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도전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이른 나이에 돈을 벌고, 사랑도 하고 아이도 낳았을 것이다. 어쩌면 고등학교 시절에 포기했던 작가라는 꿈을 키워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난 인기도서 작가가 되었을까?

  하지만 결국 부질없는 이야기다. 왜냐면 시간은 리필이 되지 않는다. 별로 남지 않는 시간 동안을 허겁지겁 살아가는 40을 바라보는 독거청년 작가 지망생일 뿐이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킨과 생맥주로 털려고 하는 소심한 직장인이기도 하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기다리는 나와 당신에게     


  기다리지 마라.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빈 잔에서 느끼는 허무함은 결국 내가 감당할 몫이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당신도 알고 있지 않던가? 오매불망 시간을 되돌리려는 당신에게 그냥 오늘은 한마디 해주고 싶어. 글을 써 봅니다.

  아니면 나에게 해주고 싶던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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