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Nov 02. 2021

아프니 모든 게 귀찮아졌다

아파도 내일은 오더라

아프다. 
몹시 아프다. 

    

  하루 연가를 내고 쉬는 거라면 적당히 나를 탓했겠지? 안 아프고 하루를 연가를 내고 여행을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 인생인가? 그런데 그게 이틀, 삼일. 그렇게 누워있어도 내일조차 애매한 상황이라면 난감하다. 

  애써 내 업무를 해주고 계신 계장님께 어쩐지 송구하다. 결코, 이 정도로 나아질 몸뚱이가 아니었던가? 퇴근을 앞두고 내일의 나를 기다려주실 그분께는 좀 멀쩡하게 나타나고 싶다. 밀린 일도 파팟 끝내고 앞선 계획과 이후에 계획도 쭉쭉 공문으로 올리고 싶다.      


그런데 아프니 모든 게 귀찮아졌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목이 아프니 그렇기도 하지만, 정신이 혼미하다. 집중을 못하게 피곤하고, 짜증이 나온다. 그랬다. 어제는 짜증이 나서 어머니에게도 전화로 어떠냐는 폭풍 질문에 버럭 화가 났다. 그리고 누가 물으면 그냥 아무것도 듣기 싫어서 손을 휘휘 저으며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렇게 아프니 세상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얼마나 재미가 없으면, 내가 내일의 계획도 안 썼을까?     


  어젯밤 잠을 자다 깨다 하며 문뜩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월세 이체 날인데, 그걸 깜빡했다. 항상 다이어리에 적었고, 업무노트에 적어서 아침에는 이체하고 시작했던 내 일상이 뒤로 한참 밀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난 이상하다.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검사도 상담도 받았다. 그리고 영양제도 맞았건만 이 상태로 누워있다. 참 답이 없어 보였다. 

  특히나 오늘 새벽은 재미없는 삶에 아픔까지 오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그랬을까? 딱 봐도 감당하기 힘든 꿈이 나를 괴롭혔다. 올해까지 버티고 다음을 생각하자는 것도 다 무질 없어 보이게 만드는 지금은 그 좋아하는 라면 맛도 못 느끼는 재미없는 삶이다.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것도 싫었던 오늘     


  아팠던 사이에 남이 해준 배달 음식을 몇 숟가락 먹다 다 버리고, 오랜만에 밥을 했다. 내가 아프면 밥을 끓여서 대충 간장이나 김치에 먹었던 밥이 생각나서 반 공기를 맛있게 먹었다. 그 좋아하던 라면도 먹다 버렸는데, 밥에 김치가 약을 먹게 했다. 그 기운에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약봉지를 보고 웃었다. 이유는 약봉지에선 만 나이로 아직은 38살이다. 땀냄새로 가득한 원룸 방에서 약을 먹고 40살이 되어가는 남자는 생각한다. 내가 나아야 할 이유.     


아파도 내일은 오니까.     


  일단 내 일은 해야 하지 않을까? 목이 쉰 소리가 나와도 자리를 지키는 게 맘이 편하다. 아프니 짜증은 나겠지만, 돈 받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미안해할 사람이 더 생기고 빚어지는 건 더는 사양이다. 고지식한 남자라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나는 나를 위해서 아프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파지고 싶어도 아프면 안 되었다. 

  가끔은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모든 업무와 가족 일과 개인적 인간관계. 또 틈틈이 나를 찾아오는 이런 통증도 한순간 포기하면 없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내일이 오니까. 오지 않으면 참 좋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은 오긴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이 리필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