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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Nov 18. 2021

마이너스 통장을 생각하면

빚을 지는 것도 능력일까?

  내 핸드폰 케이스는 5장의 카드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애착이 있는 카드는 대학교 무렵에 발행했던 국민은행카드다. 통장 잔고만 생각하고 체크카드만 쓰던 당시에 조금은 헐렁한 카드 발급 기준에 만들었던 신용카드. 처음에는 괜히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180만 원의 한도로 시작했던 그 카드로 내 힘든 시기를 함께 보냈다. 

  취업 공부를 하면서도 그랬고, 갑작스러운 부모님 병간호에 요긴하게 썼던 내 노란색 신용카드는 혜택이 그다지 없었다. 그래도 차마 해지를 못하고 가지고 다녔던 이유는 인생의 쓴 맛을 결제하며 고민을 유예해준 고마운 카드이다. 이른바 나의 애착 카드이다. 


  살다 보니 빚을 지고 살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도 카드가 이제 여러 장 생겼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현금이었다. 카드를 쓰더라도 한 달 후에는 그 청구서를 갚아야 하는 상황은 변함없다. 그래서 다시금 국민은행에 문을 두드렸다. 


  “저 마이너스 통장 개설 좀 하려고 하는데요.”


  사실 처음에는 취업 후에 6개월 조금 지난 시기라서 금액은 기대 이하라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고 5년이 지나서야 3,000만 원 정도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마이너스 통장의 개념은 간단했다. 그 돈을 쓰지 않아도 난 3,000만 원의 돈을 은행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3,000만 원짜리 인생인가?


  은행은 너무 냉정하게 날 바라본다. 그래도 공무원이니 이 정도 평가를 해주는 것일까? 별것 없는 나의 인생은 3,000만 원으로 정의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들었던 통장에서 묘한 현실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난 그 돈을 쓰지 않았다. 정말 비상시를 위한 개설이었기에 통장에 ‘-’는 절대로 남기지 않았다. 일종의 자존심이었는데, 작년에 휴직을 하면서 툭하고 손을 놓아 버렸다. 


  나의 인생도 마이너스인가?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그 구멍.


  부모님의 병간호를 하면서 모아둔 돈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생활비를 위해서도 돈을 야금야금 썼다. 그리고 통장이 마이너스가 되었다. 단위도 막판에는 몇 백 단위가 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 아닐지? 타인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당당하게 은행에 돈을 가져다 썼다. 이자도 꼬박꼬박 냈고, 원금도 상환할 능력도 있다. 그렇지만 어쩐지 우울해졌다. 그래도 빚을 지고 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마이너스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행은 말했다. 노력은 했지만, 당신은 이제 2,400만 원짜리 인생이야.


  아이러니하게 나는 빚을 내도고 쓰지 않아서 대출금이 감액되었다. 다행일까? 복직을 하고서 참 열심히 통장에 돈을 채우고 있었고, 대충 0원을 넘겼다. 그런데 감액이 되고 보니 묘하게 자존심이 상한다. 


  ‘나 정말 2,400만 원짜리 인생이야?’


  야박한 은행의 평가에 살짝 마음이 상하지만, 마이너스까지 가지 않는 삶이 나는 더 좋은 것 같다. 그래도 한도가 많이 높아진 나의 애착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위안을 삼아 본다. 


  ‘넌 참 열심히 살았어. 은행에서 신용카드는 한도를 높여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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