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Nov 28. 2021

내가 없는 거리

덕수궁 돌담길은 여전한지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기분 좋게 기차표를 예매하고는 상념에 빠졌다. 거의 1년 만의 서울이다. 대도시의 그곳은 나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1년 동안 모른 척하고 살았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내가 저곳에서 살 이유가 없기에 나는 가지 않은 것뿐이다. 나는 어느 시골에서 일하고 있기에 코로나 시국에 굳이 여행 같은 다른 지역을 가지 않으려고 했기에 못 갔던 것뿐이다. 그런 와중에도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람은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서울에 집도 있고, 따로 직장도 없으며, 이제는 만날 사람도 없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분명 아니다. 그래서 난 서울을 가지 못한 것이다. 코로나가 문제가 아녔다.      


  좋은 핑계로 올라간 서울 자리에서 그동안 서울을 못 갔던 변명을 늘어놓았다.   

   

  거의 6년을 서울에서 지내면서도 정작 서울에 살면서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지 못했다. 둘이 걷지 못했던 그 길을 혼자서도 걷지 못했던 곳이다. 그런데 직장을 갖고, 여행을 가고 나서야 걸었다. 담벼락은 높아서 궁궐 내부를 볼 수도 없지만, 그 길을 영유하는 모든 이는 행복해 보였다. 연인의 이별 코스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랑이 샘솟는 그 길. 

  내가 걸었던 그 길은 지금도 여전할 것이다. 혜화역의 극장들이 가득한 골목골목도 번잡할 것이고, 노량진 고시촌의 그곳도 수험생으로 가득하겠지? 내가 있었을 적에도 여전했던 그 길들은 내가 없었던 지난 시간에도 변함이 없었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은 순간에 이런 고민을 했다. 
  ‘나를 찾는 누군가가 있어서 걱정하면 어쩌지?’
  ‘내가 없어지면, 내가 하던 일은 어떡하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걱정은 쓸데없었다. 내가 사라진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휴직을 해보니 알게 되었다. 당장 힘든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 존재가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편해졌다.      


  간혹 사람들은 자신이 덕수궁 돌담길이 된다고 착각한다. 누구나 알고 그러한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그러한 길을 걷는 존재일 뿐인데, 왜 그리 아등바등 살려고 하는지. 스스로 돌이켜 본다.….

  어쩌면 내가 없는 거리를 애써 부정하려고 이러는 것은 아닐지? 내 흔적은 깃털보다 가벼운 낙엽 아닐까. 발권된 기차표를 보고는 생각해봤다. 그리고 1년 전 덕수궁 돌담길이 여전한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승차권만 가지고 있기에 생각으로만 상상해봤다.


  정말로 뜬금없이. 


  내가 없는 그 돌담길이 여전한지 궁금하다. 

  그래서 오늘은 대신 내가 갈 수 있는 광한루 돌담길을 걸어 본다. 내가 있는 거리와 없는 거리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이너스 통장을 생각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