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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Dec 20. 2021

밤하늘에 달이 둘이다

강물에 비친 나

  눈이 살짝 내린 겨울밤이다. 이런 겨울에는 따뜻하게 방 안에서 하루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복직하고 한동안 걷지 못했다. 그래도 주말에는 시간을 내서 걷겠다고 다짐했건만…. 나태함이 나를 이겨버렸다.


  코로나가 한참 시작일 2020년 나는 휴직을 감행했다. 몸무게가 제법 늘어서 아무리 좋은 카메라와 전문가가 찍어도 후덕해진 턱살과 터질 듯한 셔츠의 가슴 부분은 감출 수 없었다. 그때는 참 모든 것이 힘든 시기였다. 그 누구도 나를 위로해줄 수 없었으며, 그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힘들게만 했다. 대부분은 그런 질문이었다.     


  무엇이 널 그렇게 힘들게 하니?     


  뭐 그렇다고 얼굴 앞에 대고 당신이 날 힘들게 하니까. 조용히 해주겠어요? 할 순 없으니 그냥 대답을 피했다. 나도 그랬지만, 다들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줄 것처럼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다. 그냥 말이라도 곱게 걸어줬다면, 참 고마웠을 것이다. 가뜩이나 민감한 나에게 묘한 시선을 줄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렇게 휴직하고, 걸었다. 남들이 들으면 무식하다고 말할 만큼 하루에 10km를 걸었다. 거의 매일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시간이 허락하는 모든 날에는 걸었다. 그렇게 1년이 되었다.     

 

  지금은 좋아 보여. 편안해진 거 같아.     


  옷을 다 입고서 천변을 따라 쭉 이어진 자전거 도로로 걷기 시작한다. 비가 와도 전혀 걱정 없는 허름한 겨울 잠바와 최근에 산 장갑을 끼고서 걸었다.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나는 여러 글을 써왔다. <휴직하고 지질하게 동네 한 바퀴>라는 글은 휴직에 관한 내 정리하는 개념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글의 핵심은 걷기였다. 내가 왜 걸었는지? 사실 코로나 시국에 어딘가를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방법은 걷기뿐이었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걸었던 것도 아니다. 무작정 걷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난 하루에 두 시간 넘게 어딘가를 향해 걷다가 다시금 돌아왔다. 그런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 나는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래서 살이 빠지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복직하고, 1년이 지났다.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천변에 비친 조명을 바라봤다. 무슨 데칼코마니같이 같은 모습이 있는 것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 달보다 밝은 조명에 그 모습은 흐린 하지만, 달도 보였다.      


  아마 남에게 비친 모습이 내가 아닌 것은 아니겠지? 이렇게 또렷하게 보이는데.     


  주변을 탓하던 작년의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늙고 추해진 모습에 슬펐던 기억이 있다. 푸석한 머리와 한참은 부어서 터질 것 같은 얼굴. 그리고 눈 아래 가득한 그늘이 푸석한 피부를 더 어둡게 했다. 그래서 과감히 휴직을 시도했다. 그리고 다시금 날 비춰본다. 편안해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것 같다.

 

  결국, 타인에게 비친 모습도 실상 내 모습이었다는 것을….


  어차피 달은 둘일 리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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